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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으로 - 할머니에서부터 미친소까지...
    영화 이야기/감상 2008. 12. 6. 10:57

    집으로...
    감독 이정향 (2002 / 한국)
    출연 김을분, 유승호, 동효희, 민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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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차가 몇 대 다니지도 않는 버스 종점. 그 종점너머 또 끝에 외할머니의 집이 있습니다. 햄이 주식이고 밥이 부식인 우리의 귀염둥이 깍쟁이 상우는 전형적인 싸가지 없는 서울놈이었습니다. 이 어린놈의 쉑. 얼마나 싸가지가 없냐하면 말 못하는 할머니한테 병신이라며 골려대기 일쑤고, 게임기 건전지를 안 사준다고 신발을 감추더니 급기야는 자고 있는 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까지 훔쳐내네요.

    하지만 끝이 없는 외할머니의 내리 사랑은 이런 싸가지 없는 서울놈 상우까지 변하게 합니다.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는 상우에게 할머니는 나물을 내다 팔아 닭 한마리를 사다 백숙을 해줍니다. 이때만해도 싸가지 없는 상우는 '후라이드 치킨이랬지, 누가 물에 빠뜨리랬어!'라고 앙탈 부리며 밥공기를 내부치지만 그 닭을 사오다가 비를 쫄딱 맞고 알아누운 할머니를 위해 이불을 발끝까지 덮어주고, 아침상을 차려내기도 합니다.

    영화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산골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과 상우의 서울틱한(?) 모습을 잘 대비시켜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화면은 산골의 정겨운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내며 가끔 코믹한 장면을 능청스럽게 그려냅니다. 특히 닭을 잡기 위해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슥슥 칼을 갈던 할머니의 모습과 기껏 삶아온 닭을 띵깡부리며 손도 안대고 자다가, 혼자 일어나 닭을 뜯는 상우의 모습이 눅눅해 보이는 벽에 그림자로 표현된 장면은 흡사 '전설의 고향'에서 많이 보아온 '정겨운 공포'의 분위기를 덧칠한 코믹스러운 연출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밖에 건전지를 사러 혼자 마을로 내려온 상우에게 막대기로 휙휙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길을 설명해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서 그리로 해서 저리로 가면 돼'하며 휙휙 손을 저으며 말하는 아주머니의 모습 등. 온통 정겨운 유쾌함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유쾌함에서 감동을 이끌어내는 이정향 감독의 연출은 어떻게 보면 넘치지 않게 잘 조절된 듯 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억지스러운 것도 같고 그럽니다. 방안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바느질을 하는 할머니 주위를 뱅뱅돌고 실컷 씻어온 요강을 발로 내차 깨뜨리는 상우의 모습은 아무리 우리의 외할머니가 천사표라 해도 꾸지람을 줄만 합니다. 하지만 싸가지 없는 상우놈이 돈도 없다면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를 밀어뜨릴 때 조차 할머니는 가슴을 쓱쓱 문지르며 '미안해'란 수화를 할 뿐입니다.

    얼핏보면 오버라 할 수 있는 할머니의 이런 지극함을 우리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감독은 할머니가 청각 장애인이라는 결정적인 장치를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할머니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우린 외손자의 도가 넘치는 말썽에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할머니를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청각장애인이란 설정에서 오는 잇점은 그 외에도 더 있습니다. 설사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을 산골의 77세 할머니와 서울의 7세 손자사이인데 말을 할 수 없는 할머니이기에 그만큼 더 많은 에피소드를 구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할 말을 다하며 살아도 갖은 오해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 보통 사람들로선 말을 할 수 없으면서도 모든 걸 이해하며 정을 나누고 사는 할머니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시 상우가 돌아가야 할 시간. 상우는 혼자 남게 될 할머니를 위해 그렇게 귀찮아 하던 바늘에 실도 한꺼번에 다 끼워넣고 아프면 보내라고 그렇게도 아끼던 '출동 큐빅스' 카드 뒷면에 그림편지도 그려 줍니다. 하지만 상우의 엄마도, 상우도 할머니에게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서도 상우는 버스안에서 할머니의 몸짓을 그대로 따라 '미안해'라며 가슴을 쓱쓱 문지르지만, 70년대 감성으로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외치며 달려와 안기진 않습니다.

    결국 상우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찌보면 밍숭맹숭하기 짝이 없는 결말. 영화를 보고 온 저희 누나는 이 점 때문에 여기저기서 질질짜대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간다고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러닝타임을 조금 늘리더라도 감성을 자극하는 말초적인 감동의 피치를 좀 더 올렸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절제를 통한 자연스러운 감동의 유발이란 결과를 노린 이정향 감독의 의도적일지도 모르는 연출에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속의 읍내 퀸카 여자애는 엽기토끼 인형을 들고 다니고, 상우도 출동 큐빅스 로봇을 들고 다니는 2000년대의 아이들이지만 아랫집에 사는 형은 80년대 초반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늘상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지게를 지고 다닙니다. 아무래도 두메 산골의 모습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려던 과정에서 너무 욕심을 부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호수위에 아름답게 노니는 백조를 보며 우린 그 우아한 자태에 놀라워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고요한 수면 아래로 졸라게 허우적대는 백조의 물갈퀴질을 우린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집으로'의 풍경에서 보게되는 정겨움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그저 평화롭고, 그저 아름답기만 한 풍경이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 풍경만큼 아름다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할머니의 친구 중 하나인 읍내 구멍가게 할머니는 무릎이 다쳐 밖에 나오질 못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인 상우 할머니에게 하는 인사는 '죽기전에 한번 더 보자'는 것입니다. 열심히 막대기로 그림을 그려가며 상우에게 길을 가르쳐주던 할아버지는 지켜보는 이 하나 없는 방에 홀로 누워 병앓이를 합니다. 콜록 콜록 힘겨운 기침을 하며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늙으면 그저 빨리 죽어야해'란 슬프기 그지 없는 말입니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정향 감독은 '집으로' 안에 참 많은 것을 담아놓은 셈입니다. 산골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 그 속에 담긴 정겨움. 그들이 겪고 있는 가난, 쓸쓸함까지..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정향 감독. 그의 고단하고도 힘겨웠을 작업의 결과물에 기꺼이 기쁜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영화의 가장 큰 부분과 가장 작은 부분까지 빠지지 않고 채워준 할머니에서부터 미친소까지 충북 영동의 아름다운 조연배우들에게도 커다란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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