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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먼 자들의 도시 - 페르난도 아저씨 왜 그러셨어요?
    영화 이야기/감상 2008. 12. 4. 00:22


    <눈먼 자들의 도시>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주제 사라마구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눈먼 자들의 도시> 원작에 대한 관심은 남달라서 <시티 오브 갓>을 만들기 전부터 이 작품의 영화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영화화 하는데 있어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그 누구보다 적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브라질 출신으로서 포르투칼어 원작을 그대로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테고, 할리우드 주류의 스타일과 차이가 있는 그의 개성적인 연출 스타일이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를 무리없이 표현할 것이란 예상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원작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눈먼 자들의 도시>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점은 원작의 팬들에게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지만 원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겐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눈에 멀게 되고 단 한 사람만이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무척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설정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은 또 다른 얘기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작에 충실한 나머지 구체적인 사건이나 인물간의 갈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서 느낄 수 있는 영화적 특성과 재미를 경시한 것 처럼 보입니다. 원작이 갖고 있는 익명성과 시공간적 모호성이 영화속에 그대로 그려지다보니 극초반의 흥미로움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원작에 대한 이해없이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지않은 불만을 자아내게 합니다. 소설 원작을 어떤 방식으로 스크린에 표현할지는 전적으로 연출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문학과 영화가 서로 다른 장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원작을 영화화하는데 있어서 적절한 각색은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작의 주제를 최대한 중시하는 방향을 선택했고, 그러한 선택은 독특한 스타일로 잘 나타나 있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눈먼 자들의 시점을 표현하는 희뿌연 화면은 종종 1인칭 시점으로 촬영돼 관객으로 하여금 간접적으로나마 눈이 먼 상태를 경험하게 합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눈이 먼다는 것은 일종의 은유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은 주제 사라마구가 원작에 표현한 것과 같은 것으로써 애초에 구체적인 서사나 인과관계를 중시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한 이유로 영화 속에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작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메이렐레스 감독에게 요구한 것 중에 하나였는데 주제 사라마구는 소설의 영화화에 관심이 없어서 수많은 제의를 뿌리쳤었다고 합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도 처음에는 거절당했다가 결국 연출을 맡게 됐는데 막상 영화화가 진행되자 주제 사라마구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사용하지 말것, 눈물을 핥아주는 개는 커야할 것 외에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요구때문에 영화는 캐나다와 브라질 등지에서 촬영됐고, 때문에 장면마다 장소의 느낌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쨌든 원작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 해도 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새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로 영화를 보게 된 저 같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이야기중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수용소 내의 갈등은 딱히 실명이라는 장치를 동원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특별히 영화속에서 연출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 없었습니다. 평이한 수준으로 원작을 재현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더군요. 

    초반 자동차 도둑이 일본인 남자의 어깨를 치는 장면은 짜릿했습니다만 그 밖에는 <시티 오브 갓>이나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엿볼 수 있었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재치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예를들면 원래부터 장님이었던 뚱보 회계사가 여자의 죽음을 전해듣고 잠시 움찔하는 장면 이후에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만 그저 움찔하고 말더군요. 드라마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무미건조하게 연출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런 식의 연출이 반복된 나머지 전체적으로 영화적 재미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 돼 버린 것 같습니다. 

    뭐... 사족 같지만 덧붙이자면 극한 상황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나름 팬들로부터 훈남으로 통하는데 이 친구도 웬만해선 좀처럼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아주 때려죽이고픈 생각이 절로 드는 캐릭터를 연기하더군요.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분들의 감상을 보니 거의 영화적 가치보다는 애초에 원작의 주제가 갖고 있던 실명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군상의 모습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것 같더군요.

    저는 그저 영화관을 나서며 '페르난도 아저씨 왜 그러셨어요?' 라고 묻고 싶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전작을 너무 재밌게 봤던 모양입니다. 

    아저씨! 왜 그러셨어요?

    틀린 그림 찾기.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 컷인데요, 같은 사진이지만 다릅니다. 아마 뒤에 서 있는 비쩍마른 남자를 노출 때문에 지운 모양인데 그 모습이 참 기괴하게 보입니다. 설마 이거 심령사진 그런거 아니겠죠?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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