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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스티 보이즈 - 저열한 남자들의 세계
    영화 이야기/감상 2008. 11. 29. 21:20


    <비스티 보이즈>는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데뷔했던 윤종빈 감독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호스트바 선수들을 다룬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많이 불편합니다. 영화 초반은 보통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밤의 세계를 다루면서 꽤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불편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재현(하정우)은 호스트 바의 리더(영화 소개에 리더라고 나오던데 영화만 봐서는 호스트 바의 리더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겠더군요.) 입니다. 빚에 쪼들리면서도 도박을 끊지 못하고 틈만 나면 여자들 등이나 쳐먹으려고 하는 쓰레기입니다. 

    승우(윤계상)는 부자였던 집안이 갑자기 몰락해 호스트로 일하고 있지만 가슴 한 켠엔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사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인간도 전형적인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아니 전형적인 쓰레기보다는 좀 더 위험한 쓰레기군요.

    지원(윤진서)은 안마방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호스트 바에 놀러왔다가 승우를 만납니다. 지원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단편적이지 않은 인물입니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녀는 언젠가는 전공을 살려 패션 계통에서 일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승우의 도움으로 업소 생활을 접고, 그 후 고급 부띠끄(청담동 쪽 얘기니까 왠지 이렇게 써야될 것 같은)에서 일하지만 돈 욕심이 많아 그 일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초반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프로그램이 호스트 바를 잠입 취재하는 것 처럼 그 세계의 일상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일반 관객이라면 그런 장면에 당연히 흥미를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런데 승우(윤계상)와 지원(윤진서), 그리고 재현(하정우)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부터 영화는 어디선가 많이 봤던 '나쁜 남자 이야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러닝타임이 123분으로 꽤 긴 편인데 빚에 쪼들리는 재현의 모습과 지원에게 위험할 정도로 집착하는 승우의 얘기가 자꾸 반복되면서 어느 부분에선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현은 시작부터 일관성 있게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고, 승우는 시간이 지날 수록 지원에게 집착하면서 망가져 갑니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망가지는 남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더군요. 그런데 재현은 원래 그런 놈이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 수 있지만 승우가 그렇게까지 망가지는 모습은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업소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여자를 능숙하게 다루던 승우가 질투심 때문에 일순간에 망가져 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비약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돈 문제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고마는 내용 역시 앞서 말했듯이 이미 다른 곳에서 흔히 봐왔던 얘기들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소재가 된 호스트들의 얘기는 관객의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업적인 것 이외의 효과가 전혀 없어보입니다. 색다른 소재를 갖고 진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 이유에서 영화는 다소 기대에 못미쳤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좋았습니다. 하정우와 윤계상의 제대로 찌질한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윤진서는 종종 발음과 발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목소리도 그녀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약간 맹한 듯 콧소리를 넣은 그런 목소리라면 안 넘어갈 남자가 거의 없겠죠. 


    수다 1.
    올해 서른인 윤종빈 감독은 졸업 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불미스러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국방부에 촬영 협조를 구하며 실제 영화 내용과 다른 내용의 시나리오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던 일인데요, 윤 감독이 공식 사과하고 군에서 고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준비하며 윤종빈 감독은 신분을 감추고 호스트 바에서 직접 웨이터로 일하며 그 곳의 모습을 취재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는 호스트들의 쓰레기 같은 모습만이 가득한데 윤 감독이 그 곳에서 일하며 친하게 지냈을 호스트들이 윤 감독을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네요.

    수다 2.
    이 영화가 잘 되면 하정우는 <추격자>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날리게 되는 셈입니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해도 지금 시점에서 그가 우리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배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의 경호원 역할로 나왔던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아버지인 김용건의 후광에 기대어 쉽게 연예 생활을 해가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한 세간의 그런 못마땅한 시선을 그는 스스로 깨나가며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한 배우의 눈부신 성장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수다 3.
    이 영화는 아무리 좋게 봐도 '데이트용 영화'는 아닙니다. 가끔 낄낄거리며 웃을 만한 내용도 있긴 하지만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그 쪽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여자를 향한 거친 욕설과 폭력까지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영화의 결말까지 모호한 편이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극장의 여기저기에서 '아 이게 뭐야~'라는 얘기들이 흘러 나오더군요. 

    일단 윤계상과 하정우로 인해 관객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입소문이 지속적으로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커플들은 웬만하면 관람을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데이트 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저 같은 솔로에게나 양보하시는 편이... 

    뭐. 여자친구가 윤계상의 통통한 엉덩이를 꼭 봐야겠다고 고집부리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수다 4.
    사실 이 영화는 커플이 아닌 남자 혼자 보기에도 상당히 불편합니다. 저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재현과 승우가 끝없이 반복하는 못난 남자의 찌질한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민망하고 부끄러워지더군요. 뭔가 치부를 들켜버린 느낌이랄까요? 특히 승우가 칫솔 때문에 질질 짜는 장면에선 제대로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제가 욕실에 칫솔이 많은 상대와 만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질투심이 발생하고 그 질투심으로 인한 괴로움이 남자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질투보다 훨씬 치명적일 때가 있거든요. 

    수다 5.
    연애 경험이 있는 남자치고 처음 보는 남자한테 "너 얘랑 무슨 관계야?"라고 막 되먹은 말투로 따지며 멱살잡이 한 번 안해본 남자가 있을까요? 그럴 때 상대방이 하는 얘기도 꼭 이런 식이죠. (마치 자기는 수준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존대말로) "내가 왜 그걸 당신에게 말해야 됩니까?" 

    윤종빈 감독은 이렇게 일상 속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을 잘 담아내는 것 같습니다. 그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본 남성 관객들의 공통된 반응은 "내가 군대 있을 때 얘기다. 진짜 똑같다"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마 '비스티 보이즈'를 본 남성 관객들 중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재현과 승우의 찌질한 모습들은 굳이 호스트들의 세계가 아닌 일상 세계의 남자들에게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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