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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2004)
    영화 이야기/감상 2008. 11. 17. 20:58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체 게바라는 자신의 이상이 불가능하다는걸  알았던 것일까?

    내 십대를 좀먹던 고등학교 야자시간. 학교 도서관에서 찾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나온 '20세기 인물사전'인가 하는 책에서 체 게바라를 처음 알게 됐다. 이미 그의 이미지는 눈에 익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이미지였을 뿐. 사르트르가 금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얘기했던 체 게바라 자체는 아니었다. 그 후 몇 해가 더 지나고 지금은 스테디 셀러가 되어버린 창비에서 나온 빨간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다. 새빨간 바탕에 베레모를 쓰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체 게바라의 얼굴 이미지가 그려진 표지는 너무도 강렬했다. 이 시대에 체 게바라는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로 먼저 다가온다.

    그의 뜨거웠던 삶? 혁명정신? 그저 잘먹고 잘사는 것이 삶에 있어서 최우선의 가치로 추앙받는 우리네 사회에서 그런 구닥다리 생각들이 자리잡을 곳은 없다. 물질만능주의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란 느낌이 들어 뭐 다른 말이 없을까 생각해봤지만 체 게바라의 정신조차도 패션 이미지로 포장되어 팔려나가는 이 시대를 달리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바로 그점 때문에 요즘 우리가 사는 이곳이야말로 체 게바라가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을 보며 느꼈던 분노, 저항의 정신이 필요한 것 아닐까. 일단 나에게부터.

    나처럼 만사가 귀찮기만하고 게을러터진 사람들에게 체의 삶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강도의 채찍이 된다. 하지만 그뿐. 채찍에 살이 패이도록 맞아도 새살은 다시 솔솔 돋아나기 마련. 가슴 벅차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던 것이 채 몇 년도 안됐지만 요즘의 안일한 내 생활속을 들여다보자면 그의 삶이 스쳐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자극이 필요한 시기. 이 영화를 통해 스무살 무렵의 내게 커다란 각성을 던져주었던 체의 삶을 다시 느끼게 됐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알베르토와의 남미 여행은 그가 23살 때의 일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대 졸업을 앞둔 그는 이 여행을 통해 그 시대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이 처해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게릴라가 되어 쿠바 혁명의 주역이 되게 만들고, 그 후에도 콩고, 볼리비아 등지에서 39살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마칠때까지 게릴라 투쟁을 계속하게 한다.

    영화는 보통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두 젊은이의 여행길을 따라 작은 사건들이 이어지며 그려진다. 이 여행기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그다지 재미를 느낄만한 사건은 찾아볼 수 없고 전체적으로 심심한 느낌이다. 간간히 넉살 좋은 알베르토와 비교해 체 게바라의 정직한 모습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상투적인 위인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삶 자체가 한 권의 영웅소설과 같이 드라마틱한 이상 영화상에서의 그 정도 묘사는 오히려 담백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 영화에서 심심한 드라마의 공백은 한없이 넓게 펼쳐진 초원, 우뚝 솟아오른 산들, 바다와 같은 아마존처럼 남미 대륙 곳곳을 잡아낸 경이로운 배경으로 채워진다. 그 중에서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과 페루의 마추피추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절경. 페루의 쿠스코에선 소년의 입을 통해 유럽 대륙의 정복욕으로 인해 굴곡지기 시작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잠깐 들려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오늘날까지도 굴곡진 역사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후 50년이 다 됐지만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체 게바라가 당시 이상으로 생각했던 현실 사회주의 세력은 몰락을 거듭해 이제는 지구상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가 거쳐갔던 쿠바는 아직까지 사회주의 국가의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 본 그곳은 혁명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이념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그를 주제로 한 이 영화가 깐느에서까지 관심을 받게 되고, 그의 전기는 젊은이들 사이의 필독서로 꼽히며 꾸준히 팔려나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이 영화는 체 게바라의 강렬한 이미지만을 좇아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사입는 것처럼 가볍게 재미로 즐기기엔 좀 심심한 작품이다. 비록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겉멋 든 청춘들에 의해 가볍게 소비되는 것으로 전락해버렸지만 그들 가운데 일부라도 체의 치열했던 삶을 들여다보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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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난 후에 체 게바라와 함께 여행을 한 알베르토 할배가 실제로 등장한다. 영화 촬영지에서 알베르토 할아부지가 여행 도중 지나쳤던 마을에서 자신들이 치료해줬던 환자를 우연히 만났다고 하는 기사를 봤었다. 말도 없이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나...노인네들이 기억력도 좋은게벼.



     

      

    평양에 간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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