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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피는 봄이 오면 - 영화보다 극적인 현실을 위해
    영화 이야기/감상 2008.11.15 01:45

    꽃피는 봄이 오면 

    감독 : 류장하
    출연 : 최민식, 장신영, 김호정, 김강우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노총각이 있습니다. 서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오디션을 보면 번번히 떨어지기만 하는 그저 그런 실력의 소유자이지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는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그 고집스러운 열정으로 인해 도무지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이 남자는 결국 사랑하는 연인도 떠나보내게 되고, 생활은 늘 팍팍하기만 하죠. 

    어느날 오디션에 떨어지고 난 후 이 남자는 별 생각없이 강원도 탄광촌의 한 중학교 관악부 지도교사 자리에 지원하게 됩니다. 희망없는 탄광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듯 이 중학교 관악부의 처지도 이 남자의 처지만큼이나 팍팍합니다. 전국 경연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하지 못하면 강제로 해산될 처지. 다음 스토리는 어떻게 될까요? 

    팝콘을 들고 키득거리면서 보는 영화라면 당연히 이 남자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소동 끝에 결국 관악부를 우승시키고, 떠나간 여인네는 깨끗이 잊은 채 주요 등장인물 중 한명인 쌔끈한 아가씨 약사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그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류장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에서 허진호 감독과 부대껴가며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인물이더군요. 그런 감독의 전적(?)을 고려해보면 이 영화가 적어도 할리우드 오락영화 스타일은 아닐것이라는게 쉽게 짐작이 됩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류장하 감독이 조감독을 맡았던 영화들처럼 그다지 극적인 사건도 없이 그저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랑하면서도 붙잡을 수 없었던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도 그저 행복하게 살라는 말밖에 하지 않고, 또다른 등장인물인 중학생 녀석은 하나뿐인 할머니를 갑작스런 사고로 잃어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는데도 별로 울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류장하 감독의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고, 그 아이가 울지 않아도, 그녀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고, 할머니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건에 대한 세부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감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저절로 조금씩 스며들게끔 하는 연출이랄까.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와 부조화스러울 정도로 예뻤던 장신영

    그밖에도 영화를 보다보면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난롯가에 앉은 최민식이 문밖을 내다보다가 스르륵 잠이 드는 장면이나, 아무 생각없이 엄마에게 건다고 누른 핸드폰 번호가 헤어진 그녀의 전화번호여서 얼떨결에 통화를 하게 되는 장면 등이 그렇습니다.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 벚꽃 날리는 엔딩도 그렇구요.


    이 영화는 꿈과 현실에 관한 영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생활에 시달리다보면 점점 꿈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렇게 현실에 익숙해지다보면 급기야는 자신이 꿈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현실에 부닥쳐 그저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기만하는 상황.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저 남자 역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간직한 채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결국 탄광촌의 허름한 방구석에서 김치도 없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이 몸에 베일 정도가 됩니다.

    새해 전날밤도 라면

    그렇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새해 전날 밤, 티비 뉴스에서 한 노숙자가 길바닥에 앉아 라면을 먹는 모습이 나오자 그는 먹고 있던 라면을 넘기지 못하고 허탈한 웃음을 짓습니다. 자신의 친구처럼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음대 입시준비생들을 상대로 학원을 하고, 부업으로 밤무대에서 일을 하면 적지 않은 돈이라도 만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꼬장꼬장한 자존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대가는 새해 전날 혼자 끓여먹는 라면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속적인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그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마저 초연할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탄광촌의 아이들보다는 낫습니다. 이 아이들은 아직 나이를 먹기도전에 자신들의 꿈을 접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죠. 그는 이 아이들의 작은 꿈을 위해, 혹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위해, 꽃 피는 봄이 오면 관악부는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아이들과 부대끼며 경연대회를 준비합니다.

    이 영화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장신영의 캐스팅. 장신영은 탄광촌의 약사로 나오는데요, 최민식과 연결될 듯 말듯한 삼각관계의 설정까지 생각했다면 그녀 보다는 좀 나이도 많고, 덜 예쁜 배우가 더 어울렸을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까놓고 말해서 아무리 병든 아버지 때문이라지만 그렇게 젊고 예쁘고 맘씨까지 고운 약사가 탄광촌의 허름한 약국을 지키고 있다는 설정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카센터 총각과의 연분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 사이에 삼각관계라는 설정을 집어 넣은 건 무리였다는 느낌입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다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던 만큼 난데없이 등장하는 밍숭맹숭한 삼각관계는 차라리 생략하는 것이 더욱 깔끔했을 듯...


    소주생각 물씬, 바다가 보이는 횟집

    김호정이란 여배우는 아주 매력적이더군요. 예전에 MBC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 나오는 것을 처음 봤는데, 말투도 특이한 것이 연극배우 출신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연극계에서 입지를 다져온 배우더군요. 스타일이 참 매력적인 배우였습니다. 최민식의 연기는 뭐.. <파이란>이나 <올드보이>에서의 열연을 통해 이제 울나라 대표급 배우로 성장했지만 워낙 선 굵은 연기만 보다보니 이 영화처럼 잔잔한 스타일에는 왠지 조금.. 아주 조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라면 먹는 연기는 군말이 필요없이 아주 딱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루하다고 투덜대기만 했을 이런 영화가 좋아지는 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ㅠㅠ

    원래 영화는 현실보다 훨씬 극적이기 마련인데 이 영화의 경우엔 현실이 더 극적이더군요. 영화속에 실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삼척의 도계 중학교 관악부는 실제로 전교생이 2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학교의 관악부인데 전국 대회에서 수차례 최우수상과 금상을 탔더군요. 덕분에 TV 출연도 자주하는 아주 스타 관악부였습니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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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장하 감독은 오랜 휴식 끝에 강풀 원작의 <순정만화>를 들고 다시 관객들에게 찾아왔습니다.
    강풀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증 중에 가장 낫다고 하던데요,
    이 영화를 되새겨 보면 류장하 감독의 <순정만화>는 꽤 괜찮은 작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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