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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렛 미 인 - 사랑 이야기라기엔 불편한 그 무엇
    영화 이야기/감상 2008. 11. 17. 08:55

    Let me in...


    글 중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주의하세요.

    브레즈네프가 소련의 서기장으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던 1982년, 쌓인 눈이 녹을 새도 없이 또 쌓이는 스웨덴의 어느 도시에 12살 소년 오스칼이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학교에서 못된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하지만 엄마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대신 한 밤중이면 몰래 밖에 나와 칼로 나무를 찌르며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을 응징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런 오스칼에게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소녀 이엘리가 나타납니다.

    여기서부터 '전세계를 매혹시킨 슬픈 사랑이야기'라는 과장된 카피를 달고 개봉한 <렛 미 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렛 미 인>은 스웨덴 영화라는 점과 세계의 몇 몇 작은 영화제의 수상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할리우드 태생의 뱀파이어 영화와는 큰 차이가 있는 독특한 색깔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사람의 피를 빨고 죽이는 설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렛 미 인에서 중요한 설정은 12살 왕따 소년 오스칼과 뱀파이어 소녀-인지 소년인지 정확하지 않게 묘사되는- 이엘리의 관계입니다.   

    하... 외롭고 괴로운 12살 인생


    오스칼은 부모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왕따 소년입니다. 오스칼의 엄마는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오스칼을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보통의 싱글맘답게 바쁜 생활로인해 오스칼에게 큰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가끔 따로 사는 아빠에게 가는데 아빠는 아들을 반기며 즐겁게 놀아주지만 동성애인의 느낌이 나는 이의 방문을 받을땐 오스칼을 등한시해버립니다. -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동성애코드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외로운 오스칼은 이엘리에게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위안을 받으며 점점 이엘리에게 빠져듭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엘리는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소녀입니다. 그런데 이엘리는 12살의 나이로 성장이 멈춘 채 수백년을 살아 온 뱀파이어입니다. 이엘리는 어린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생활에 제약이 있어 보호자격인 중년의 남자 호칸에게 의지합니다. 호칸은 마취가스를 이용해 젊은 남자들을 기절시키고 그들의 신선한 피를 구해옵니다. 영화에서 호칸이 무엇때문에 이엘리를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며 피를 구해오는지는 분명하게 묘사되지 않습니다만 눈치빠른 관객이라면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원작 소설에서 호칸은 페도파일(Pedophile-소아성애자)이고 이엘리는 거세당한 남자아이라는 설정이라고 합니다.

    내가 여자아이가 아니어도 좋아할래?


    이엘리는 처음에는 오스칼을 경계하지만 둘은 이내 가까워집니다. 이엘리의 정체를 모르는 오스칼은 이엘리에게 수줍은 듯 고백을 하고 이엘리는 그런 오스칼에게 자기가 여자아이가 아니어도 좋아하겠냐는 얘기를 합니다. 오스칼은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계속 이엘리에게 빠져듭니다. 결국 이엘리에게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는 얘기를 하고 '피의 맹세'를 하자고 데려간 어느 지하실에서 이엘리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잠깐의 혼란을 겪을 뿐 이엘리에 대한 마음을 바꾸진 않습니다.

    유럽의 작은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이 <렛 미 인>은 관객의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한 목소리로 극찬을 늘어놓고 있고 일부 관객들도 거기에 동조하고 있지만 어떤 관객들에겐 지루하고 이해하기 힘든 유럽 영화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초등학생들에게 살인범의 범행 은폐 수법과 마약의 종류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는 북유럽 스웨덴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렛 미 인>은 여러 면에서 보통의 관객들에겐 불편한 영화입니다. 제게도 <렛 미 인>은 약간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엘리와 호칸의 관계, 이엘리의 기구한 운명 등에 관해 지극히 불친절한 최소한의 묘사로 관객에게 스스로 이해할 것을 강요하는 듯한 유럽 영화 특유의 감성을 쫓아가기 버겁더군요.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이나 죽였지.


    이 영화에 호감을 보이는 관객들의 일반적인 평가인 12살의 몸에 갇힌 뱀파이어 소녀와 친구 하나 없는 왕따 소년의 사랑 이야기라는 낭만적인 관점도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우선 오스칼은 학교에서 당하는 괴롭힘과 이혼한 부모로부터의 애정 결핍을 신문에서 살인자들에 관한 정보를 스크랩하는 것으로 해소합니다. 그대로두면 위험한 인물이 될 것이 분명해보이는 아이죠. -원작 소설에서는 오스칼의 살인자에 대한 동경심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을 경계하면서도 그를 거부하지는 않는데 자신을 돌봐주던 호칸이 죽고나자 오스칼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엘리는 호칸의 대역으로 오스칼의 내면에 잠재된 살인 본능을 이용하기 위해 그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좀처럼 수월하게 피를 구해오지 못하는 호칸을 매섭게 몰아치던 이엘리를 떠올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엘리와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는 없겠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우면서도 이엘리를 찾지 않던 오스칼이 다시 이엘리와 함께 떠나게 되는 계기 역시 불편합니다. 아직 어린 오스칼이 이엘리를 위해 칼을 쥐고 호칸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 뻔한데 둘의 여정을 어떻게 낭만스러운 관점으로만 보고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둘의 앞 날을 생각하니 온통 눈으로 뒤덮여 적막감이 감도는 영화의 배경만큼이나 우울해 졌습니다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 영화의 독특한 색깔이 무척 높게 평가받고 있고 할리우드의 발빠른 리메이크 결정 소식도 들리더군요. 때문에 약간은 대중의 취향에서 벗어난 유럽 영화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렛 미 인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평소 자신의 영화 취향이 대중적 취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개봉관도 적은 이 영화를 일부러 찾아서 보는 수고를 할 것 까지는 없어보입니다. 단지 평소에 쉽게 접하기 힘든 스웨덴의 예쁘장한 두 아역 배우를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p.s 마지막 장면에 기차 안에서 오스칼과 이엘리가 나누는 모스 부호의 의미는 '키스, 키스'라고 하더군요. 좀 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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