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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메오를 즐기는 감독들
    영화 이야기/수다 2009. 4. 13. 22:58




    버스를 놓치는 중년 신사,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North By Northwest, 1959)


    유명인이 영화속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스치듯이 등장하는 것을 말하는 까메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자신의 연출작에서 지나가는 행인 등으로 등장한 것이 시초입니다. 히치콕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영화를 보며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그의 모습을 찾는 것은 관객들의 즐거운 유희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데 감독의 모습을 찾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영화의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있자 그는 영화의 앞부분에 한해서만 등장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앞부분에 등장할테니 그 후엔 더이상 화면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는 의도였죠. 위의 장면도 그런 맥락에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모습입니다.

    이처럼 히치콕 감독이 까메오의 기원을 수립한 후 지금까지 수많은 감독들이 재치있는 거장의 뒤를 따라 유쾌한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까메오의 형태도 점점 다양해져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는 히치콕 감독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감독의 영화에 까메오로 등장하거나, 유명배우나 가수, 스포츠스타 등을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재밌는 까메오의 사례는 셀수도 없이 많습니다.

    감독들의 까메오 출연만 해도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틴 스콜세지, 피터 잭슨, 올리버 스톤 등등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줄줄이 엮어서 몇 달치의 포스팅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내용으로 포스팅을 한다면 엄청난 양으로 인해 한동안은 업데이트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죠. 여기에 배우나, 가수, 스포츠스타 등으로 범위를 확장한다면 아마도 까메오 특집으로 몇 주는 족히 우려먹을 수 있는 양이 나올겁니다. 말해놓고 보니 상당히 솔깃한데요? ㅋ

    한편으론 그 방대한 양으로인해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엄두가 안나는 답답함도 느껴지는군요. 그래서 우리나라 영화 중 까메오의 원조격인 히치콕 감독처럼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까메오로 등장한 경우로 범위를 좁히고 기억나는데로 정리해봤습니다.


    오지랖 넓은 의사 임상수 감독 (그때 그 사람들-2004,  눈물-2000)


    임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두번이나 의사 역할로 등장합니다. 두번 모두 환자에게 치료와 상관없는 충고를 마다않는 오지랖 넓은 의사 역할이었죠. <그때 그 사람들>에선 중앙정보부장에게 독재정권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그만 발을 빼라는 간 큰 충고를 하고, <눈물>에선 술집에서 일하는 가출소녀가 자신에게 추근덕대는 남자 앞에서 손으로 유리잔을 깨 치료를 받으러 오자 깰거면 그 남자 머리를 깨야지 손이 이게 뭐냐고 잔소리합니다. 까메오 출연임에도 캐릭터에 평소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시킨 듯한 느낌입니다.

    이밖에도 임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자신의 또다른 작품인 <바람난 가족>에 판사 역할로 출연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 '알리 사건 판사역'으로 출연진에 이름이 올라 있기는 한데, 편집으로 들어낸건지 그 영화를 봤을 때 임상수 감독의 출연 장면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버스 승객 박찬욱 감독 (복수는 나의 것, 2002)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탄 마을 버스 승객으로 얼굴을 비춥니다. 짧지만 의미 있는 대사까지 한 임상수 감독과 달리 박찬욱 감독은 까메오 본연의 모습으로 아주 잠깐 등장합니다. 보시다시피 얼굴만 빼꼼히 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저 역시 처음 볼 때는 전혀 알아차리 못했고 나중에 DVD에 수록된 감독의 해설을 듣고서야 알아봤습니다.



    폼나는 지휘자 변혁 감독 (주홍글씨, 2004)


    엄지원이 첼로연주를 하는 장면에서 지휘자로 등장하는 변혁 감독입니다. 까메오긴 하지만 지휘자 역할을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대단합니다. 문외한인 제 눈에는 실제 지휘자와 다름없는 자세로 보이던데 까메오 출연을 위해 따로 연습이라도 하신걸까요? 파리 1대학 미학 박사 출신이라는 그의 프로필을 떠올려보니 괜히 더 폼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미학과 지휘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_-;)

    엄지원은 저 장면을 위해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첼로 연습을 했다고 하니 변혁 감독도 오케스트라 지휘가 평소 취미(?)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연습은 했을겁니다. 하지만 엄지원의 첼로 연주에 비하면 지휘 연기는 식은 죽 먹기 아닌가요? 연미복 차려 입고 단상에 서서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며 폼만 잡으면 땡이니까요. (실제 지휘를 이렇게 표현했다면 무식하다고 몰매맞겠죠?) 물론 버스 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단 어려웠을 겁니다.


    풍 맞을 뻔한 형사 장진 감독 (아는 여자, 2004)


    장진 감독도 까메오하면 떠오르는 감독 중 한명입니다. <킬러들의 수다>에 이어 <아는 여자>에서도 직접 까메오로 등장했고, 자신과 친한 배우들을 자주 까메오로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아는 여자>에선 정재영을 취조하는 형사로 등장해 '풍온다', '풍왔다'라는 대사로 많은 웃음을 줍니다. 까메오라기 보다는 조연이라고 해야 될 정도로 재밌는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중국집 주방장 이준익 감독 (라디오 스타, 2006)


    이 영화에서 이준익 감독은 중국집 주방장으로 등장해 코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쾌한 영화를 더욱 유쾌하게 만든 즐거운 까메오 출연이었습니다. <라디오 스타>는 이준익 감독 말고도 여러 가수들과 영화의 스텝, 심지어 영화사 여직원까지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까메오를 남용하는 경우 영화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단점이 있는데 <라디오 스타>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엿보입니다. 알고보면 영화의 또다른 재미로 느낄 수 있지만 정보가 없다면 스텝이나 영화사 직원의 까메오 출연은 관객들로 하여금 어딘지 연기가 어색한 엑스트라로 밖에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영월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런 약간의 어색함은 정겨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점 손님 최동훈 감독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최동훈 감독도 까메오를 즐기는 감독입니다.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에서부터 박신양의 서점 손님으로 등장하더니 <타짜>에서는 무려 세 장면에서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수경 뒤의 창가에 서있는 저 사람이 최동훈 감독입니다. 저 장면도 나중에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된 장면인데요, 설명을 듣고 봐도 저렇게 흐릿하게 뒷모습만 나오니 전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니까 그런줄로만 알고 있는 셈입니다.

    저렇게 알아보지도 못하게 등장한 이유가 뭘까요? 이왕 까메오로 등장할거면 관객이 알아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게 낫다고 봅니다만 최동훈 감독의 생각은 다른가 봅니다. 최동훈 감독이 앞으로도 자신의 작품에 까메오로 계속 등장할 계획이라면 관객들을 위해 영화 시작 초반에 등장하기로 한 히치콕 감독의 배려를 한번 쯤 생각해봤음 합니다. 반드시 히치콕 감독처럼 초반에 등장하면 좋겠다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관객이 알아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줬음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한편 최동훈 감독은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도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주례보는 신부 진광교 감독 (뷰티풀 선데이, 2007)


    진광교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주례보는 신부로 등장합니다. 변혁 감독과 마찬가지로 꽤 폼나는 까메오입니다. <뷰티풀 선데이>는 주연 여배우인 민지혜가 예뻤다는 것 말고는 별로 기억될만한 것이 없는 영화입니다. 독특한 이원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스릴러 장르 영화인데 그 독특한 구성이 오직 영화속의 결정적인 반전만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여 영화가 진행될 수록 긴장감도 느슨해지고 반전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스릴러 영화로선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 때문인지 관객들의 관심을 별로 못받은 작품입니다.

    저는 오로지 개봉당시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에 영화 홍보차 출연했던 민지혜의 예쁜 모습에 반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한때 전자 경마장에 버닝했었다는 민지혜의 경험담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예능에 통하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만큼 재밌었죠. 그런데 데뷔 초 반짝 주목을 끌다 요즘은 활동이 뜸하네요. 다시 영화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수다 1. 위에서 말했듯이 까메오에 관한 얘기는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아 할 수 없이 범위를 좁혀서 얘기해봤는데요, 생각나는데로 쓰고보니 모두 최근 작품들이네요. 우리나라의 영화 시장은 몇 년전부터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성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기회도 예전에 비해 많아졌습니다. 까메오라는 것이 일종의 유쾌한 놀이임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영화 제작환경에 여유가 생겨 젊은 감독들이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 최근 들어 우리 영화에서 재밌는 까메오를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수다 2. 까메오를 즐기는 감독들은 대부분 한번에서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즐깁니다. 자신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을 출연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친분에 따라 다른 감독을 자신의 영화에 등장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다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임상수 감독의 경우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와 봉준호 감독의 <플란더스의 개>에 까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에선 자신의 작품 <눈물>의 조감독이었던 최동훈 감독을 군의관으로 등장시키죠. 박찬욱 감독도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승완, 류승범 형제와 <올드보이>에서 용이 감독 등 다양한 인물들을 자신의 영화에 까메오로 등장시킵니다. <친절한 금자씨>에선 아예 자신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대거 까메오로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최동훈 감독 역시 <범죄의 재구성> 이후 두번째 작품인 <타짜>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원작자인 허영만 작가와 산악인 박영석씨도 까메오로 등장시켰죠. 최근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이런 사례는 얘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한 감독들이라는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에게 <JSA>의 성공이 없었다면 <복수는 나의 것>도 없었을 겁니다. 최동훈 감독도 <범죄의 재구성>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타짜>에서 그렇게 원하는 대로 까메오를 즐기지 못했겠죠.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얘기한 감독들 중 변혁 감독과 진광교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두 감독은 모두 엄숙한 까메오로 등장했는데 영화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습니다. 과연 그들은 다음 작품에서도 까메오를 즐길 수 있을까요?




    수다 3. 최근 할리우드에서 히치콕 감독처럼 자신의 영화에 슬쩍 얼굴을 비추는 감독으로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군요. 그가 자신의 작품에 까메오로 등장하는 것은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갈수록 까메오로 등장하는 방법도 기발해져 처음 <식스 센스>에서는 저렇게 대놓고 얼굴을 비추더니 <빌리지>에서는 유리에 반사된 모습만으로 등장합니다. 최근작인 <해프닝>에서는 전화상의 목소리로 출연했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그를 무척 좋아해 예전부터 그에 관한 얘기를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얘기를 꺼내게 되네요. 많은 영화팬들이 그에게 늘 <식스 센스> 때처럼 숨막히는 반전을 기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엔 반전의 묘미 말고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의 영화엔 늘 가슴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진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샤말란 감독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다 4. 하다보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까메오 얘기. 제가 언제 또 이 얘기를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워낙 재밌는 것들이 많은 내용이니 어느 부지런한 블로거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에 대해 언젠가 포스팅을 할 수도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어느 포털 싸이트 메인 화면에서 '까메오 좋아해?', '까메오로 등장한 가수', '까메오로 등장한 스포츠스타', '까메오 열전' 등등의 제목을 보게 될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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