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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기미가요 때문에 자살한 교장도 있다
    남의 이야기/투덜대기 2009. 4. 6. 18:17
    

    조혜련이 일본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벌인 행동이 도마에 올랐네요. 프로그램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기미가요를 듣고 다른 일본 출연자들과 함께 아무 생각없이 박수를 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조혜련 측은 기미가요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일부 네티즌은 일본에서 몇 년간 활동하고 일본어 책까지 발간한 조혜련이 그저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명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더욱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미가요가 대체 뭐길래 문제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아마 "기미가요? 그거 일본 국가 아니야? 근데 국가 듣고 박수친 게 뭐가 문제야?"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 듯 해요. 이건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기미가요의 가사는 무척 짧은 편이고 내용도 간단해요. 가장 최근에는 WBC 결승 한일전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멜로디도 좀 우울하고 그래요.

    きみ(君)がよ(代)は ちよ(千代)い やちよ(八千代)に

    さざれいし(石)の いわお(岩)となりて こけ(苔)のむすまで  

    기미(군:천황)의 세상은 천년만년 이어지소서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이런 내용이죠. 그냥 보면 가사 자체엔 특이한 점이 없지만 이 노래가 일본의 지난 역사에서 어떻게 불려왔는지를 살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미가요는 일본이 군국주의의 광기에 휩쓸려 있던 시절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지 국민들에게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화하는 용도로 불려졌어요.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 나라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강요받았다고 해요. 

    이런 과거로 인해 기미가요는 또다른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히노마로(일장기)와 함께 일본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켜왔어요. 기미가요와 히노마루가 일본의 공식 국가, 국기로 법제화된 것도 불과 10여 년 전인 1999년의 일이죠. 이전부터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둘러싼 일본 내의 논란은 끊이지 않았는데요, 가장 큰 논란은 교육계에서 있었습니다. 교육위원회가 각급 학교의 졸업식에서 기미가요 제창과 히노마루 게양을 지시하자 일부 양심적인 교사들이 이를 거부했던 것이죠. 

    그러던 중, 1999년 히로시마에서는 졸업식 행사때 히노마루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라는 교육위원회의 명령과 그에 반대하는 교직원 사이에서 갈등하던 고등학교 교장이 졸업식 하루 전 날 자택에서 목매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국기, 국가법이 제정돼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일본의 공식 국기, 국가로 법제화됐지만 이후로도 일부 교사들은 교육위원회의 지시를 거부했고 교육 당국은 명령에 불복한 교사들을 징계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결국 교사들은 소송을 제기해 2006년 법원으로부터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강요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냈어요. 하지만 법원이 명령에 불복한 교사들을 징계한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해 지금까지 이 문제로 징계를 받는 교사들이 있다고 해요. 

    이런 모습들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을 당연시하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죠. 사실 우리 사회의 이런 모습도 결국 일본 군국주의의 습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강화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주 어렸을 때는 6시가 되면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요. 요즘은 이런 모습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것이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은 것들이죠. 

    국기 하강식에 길을 멈추고 경례하는 모습 1978.



    이런 식으로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행해오던 것들이 일본에서는 그들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단순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위에서 얘기한 일본내의 논란도 결국은 일부 양심적인 일본인들 사이에 국한된 것들이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본 학교에서는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요.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 학생들은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이고 식민지배를 했던 사실조차 모른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제가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일본 친구들도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어요. 대학생이었는데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했던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더군요. 당시에는 일본 젊은이들의 이러한 역사적 무지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한류로 인해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일본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저런 내용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 것들이니까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렇게 일본 우익 세력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어요. 문제는 조혜련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 중에도 점점 지난 날의 아픈 역사와 관련된 것들을 잊어가고 있다는 거죠.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상처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인들의 철저한 사과와 보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도 받지 않고 먼저 잊고 있는 셈이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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