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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 배우들의 무명 시절
    영화 이야기/수다 2008. 12. 9. 01:58



    가끔 잠이 오지 않을때마다 이불 속에서 리모콘을 꼼지락거리며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곤 합니다. 그 버릇 덕분에 전세계의 란제리 패션 경향을 시즌별로 줄줄 꿸 수 있게 됐죠. 흐흐.. 아주 가끔씩은 영화 채널도 봅니다. 보통 TV에서 영화를 볼 땐 깊게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예전에 봤던 영화가 방송될 때만 보는데요, 별다른 수고 없이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처음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거든요.

    오늘 하려는 얘기도 어느 잠 못 이루던 밤에 케이블 채널에서 우연히 [비트]를 다시 보고 떠오른 내용입니다. 이문식, 김수로, 정재영. 이젠 누가 뭐래도 우리 영화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중있는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관객의 눈에 띄지 않는 우울한 단역 시절이 있었죠. 처음 볼 때는 당연히 몰랐던 사실인데 가끔 케이블 채널에서 예전에 본 영화들을 다시 보고 있노라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반가운 얼굴을 예상치도 못한 장면에서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 느낄 수 있는 놓치기 아까운 재밌는 경험입니다.




    그렇게 얼마전에 [비트]를 다시 보다가 이문식을 발견했습니다. 정우성과 임창정이 함께 차린 라면 가게 건물을 철거하는 구청직원으로 나옵니다. 지금보다 많이 홀쭉하네요.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비트]는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은행나무침대], [쉬리] 등과 함께 우리나라 상업 영화의 중흥을 가져온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극장에서 봤던 브로셔에 [비트]의 컷 수를 언급하며 보통 7~8백 컷으로 구성되는 국내 영화와 달리 [비트]는 2000여 컷에 가까운 촬영과 편집으로 새로운 액션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는 홍보 문구가 떠오르네요. 그 내용에 걸맞게 [비트]는 당시로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감각적인 화면과 편집으로 많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나에겐 꿈이 없었다'라는 이민(정우성)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비트]는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였습니다. 저희 반 친구 중에 한 녀석은 비디오로 [비트]를 몇 번씩이나 돌려보고 학교에 와서 정우성과 임창정, 유오성의 대사를 매일같이 읊어댈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재밌게 본 영화이고 당시 그 녀석의 설레발을 옆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탓에 아직까지 [비트]의 대사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네요.

    "어디서 좀 놀았니? 이 ㅆㅂㄹㅁ!" - 그 중에 하나인 임창정의 이 대사는 개그코너의 단골 메뉴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마치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만화 책의 한 컷을 보는 듯한 유오성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 유오성은 이문식과 달리 무명의 단역은 아니었지만 [비트]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입니다. 외딴 산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독특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도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사용된 음악들도 독특하고, 신인이었던 고호경의 모호한 표정도 많은 화제가 됐었죠. 역시 처음 볼 때는 몰랐지만 한참 후에 TV에서 보면서 등산이 아닌 얄딱꼬리한 목적으로 산장을 찾은 커플의 남자가 정재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정재영은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에서도 택시기사로 등장하길래 무척 반가웠드랬습니다.




    [초록물고기]에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취객 역할도 했더군요. 역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나오자마자 주정부리다 막동이 한석규한테 얻어터지고 안나옵니다. 정재영 형님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





    20만원에서 시작해 2억까지 개런티가 1000배가 됐다는 얘기를 해 화제가 됐던 김수로입니다. [쉬리]에서 북한 테러리스트로 나온 모습인데요, 요즘의 이미지와 다르게 눈매가 아주 매섭습니다. 역시 처음 볼 때는 저 배우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경우였죠.





    [주유소 습격사건]의 양아치 패거리입니다. 유해진이야 워낙 전부터 좋아했던 배우여서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종혁이 유해진 패거리 중 한 명이었던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종혁은 [말죽거리잔혹사]의 냉정한 선도부장 역할로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줬던 배우입니다. 저 역시 [말죽거리잔혹사]를 보면서 오로지 권상우의 단단한 복근과 이종혁의 강한 인상에만 정신이 팔렸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멋진 배우가 튀어나왔어? 라는 생각에 프로필을 찾아봤더니 생각보다 나이가 꽤 많길래 놀랐었죠.

    알고보니 줄곧 연극무대에서 활동했고, 모르는 사이 저렇게 [주유소습격사건]에도 얼굴을 비췄더군요. 요즘은 TV 드라마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던데, 서른이 넘어서 빛을 본 만큼 앞으로도 멋진 모습이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한 밤중에 란제리쇼를 보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된 [비트]의 이문식으로부터 시작해서 꽤 멀리까지 왔네요. 생각해보면 제가 얘기한 저 배우들 모두 무명 배우의 위치에서 멈춰 서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온 결과 오늘날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게 된 것 같은데요, 다시 말해 저 배우들이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면 이렇게 떠올릴 수도 없었겠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거. 저들처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전 오늘밤도 란제리쇼 채널고정..
    요즘은 빅토리아 시크릿을 재탕해주더라구요.
    재탕에 삼탕 사탕까지 하는게 케이블 채널의 속성이지만
    빅토리아 시크릿 정도라면 오탕까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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