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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을린 사랑
    영화 이야기/감상 2011. 8. 15. 01:41




    그을린 사랑
    감독 드니 빌뇌브 (2010 / 캐나다,프랑스)
    출연 루브나 아자발,멜리사 데소르모-풀랭,막심 고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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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어느 지역의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 안. 어린 아이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모여 있다. AK소총을 든 남자들이 아이들의 머리를 깎는다. 한 아이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오른발 뒷꿈치에 세 점 문신이 있는 아이. 아이의 표정이 묘하다.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 아니다. 까닭모를 분노와 울분이 느껴진다.    

    캐나다의 어느 공증인 사무실.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몬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달받는다. 잔느에게는 아버지를 찾아라. 시몬에게는 형을 찾아라. 찾아서 편지를 전해주거라. 편지를 전해주기 전까진 묘비도 세우지말고 이름도 남기지 마라. 시신은 얼굴을 아래로, 등을 위로 향하게 매장하고 기도도 하지마라. 생전의 어머니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매는 당황한다. 어머니는 왜 스스로 불명예스러운 장례를 택했을까. 우리에게 아버지와 형. 오빠가 있었단 말인가. 아들 시몬은 강하게 반발한다. 어머니의 유언을 따를 수 없다. 장례는 정상적으로 치르겠다. 딸 잔느는 어머니가 남긴 유언대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어머니의 고국인 레바논으로 떠난다. 

    잔느가 레바논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어머니 나왈의 젊은 시절을 보여준다. 크리스천인 나왈은 무슬림 청년과 사랑에 빠져 함께 고향을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오빠에게 들켜 눈앞에서 남자 친구가 살해당하고, 본인도 명예 살인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할머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이슬람 교도의 아이를 가진 나왈은 가문의 수치로 여겨져 아이를 낳을 때까지 집안에 감금당하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나왈의 할머니는 아이를 보내기 전 아이의 발 뒷꿈치에 점 세 개의 문신을 새겨 넣는다. 나왈은 언젠가 자신의 아이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향을 떠난다.

    레바논은 고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기독교가 뿌리내린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후 몇 차례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거치며 양 세력 간의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현대에 들어 양측의 충돌은 이스라엘과 이슬람 세력의 개입으로 더욱 격화돼 내전으로까지 확대됐다. <바시르와 왈츠를>의 소재가 된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 사건 역시 레바논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이스라엘 군의 묵인하에 기독교 민병대가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난입해 하룻밤 새 수천 명에 달하는 비무장 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다.

    <그을린 사랑>도 당시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다니며 기독교 온건 성향의 신문사에서 일하던 나왈은 내전이 격화되자 아들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아들이 있던 기독교 마을은 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받아 쑥대밭이 됐고, 고아원의 아이들은 모두 납치된 상태였다. 다시 길을 떠난 나왈은 신분을 감추고 이슬람 난민들이 탄 버스를 얻어타고 가는 도중 기독교 민병대의 공격을 받게 된다. 나왈은 끔찍한 학살의 현장에서 자신이 기독교도임을 밝혀 혼자서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지만 그 일을 겪은 후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저항 세력에 가담해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한다. 나왈은 기독교 평화주의자였지만 기독교 민병대의 잔혹함을 목격한 후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나왈은 15년 간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또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나왈의 비극은 레바논의 종교분쟁에서 비롯됐지만 종국에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차원으로 점철된다. 나왈이 용서와 화해를 얘기할 수 있게 된 이유다. 한 개인의 용서와 화해는 끝없이 반복되는 증오와 분노의 굴레를 깨뜨리는 시발점이 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단순한 금기에서 출발한 비극에 레바논의 역사를 조합해 보편적이면서도 역사성을 지닌 이야기를 완성했다. 각본과 연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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