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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데이즈 -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남자영화 이야기/감상 2010. 12. 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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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데이즈, The Next Three Days (2010)
<쓰리 데이즈>의 이야기는 간결합니다. 대학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는 존 브레넌(러셀 크로우)과 직장 여성인 라라 브레넌(엘리자베스 뱅크스)은 무척 금실 좋은 부부입니다. 둘 사이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매일 아침 식탁에서 세 식구가 사진을 찍어서 남길 정도로 가족 간의 정이 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출근 준비 중이던 라라를 체포합니다. 전날 밤에 직장 상사를 살해했다는 혐의였죠. 라라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드러난 증거들은 그녀에게 불리한 것들 뿐입니다. 그녀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라라는 평생 감옥에 갇혀지내야 할 처지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존의 고군분투가 시작됩니다. 그는 아내의 결백을 입증할 수 없다면 감옥에서 탈출 시키기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그 후 수감 생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다 감옥에서 일곱 번이나 탈출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리암 니슨)을 찾아가 그로부터 탈출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합니다. 이후 차근차근 탈출 준비를 진행하던 중 존은 라라가 3일 후에 다른 곳으로 이감된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거죠. 이때까지 존의 준비 과정을 차분히 보여주던 영화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합니다.
폴 해기스 감독은 대단한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전달할 때에도 적절한 트릭을 이용해 감동이나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재주가 특출납니다. 그의 영화엔 모자라거나 과함이 없이 긴장과 갈등, 위기의 발생과 해결 등, 훌륭한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죠. 좋은 시나리오와 꼼꼼한 연출로 가능한 것들말입니다.
2006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을 받은 <크래쉬>는 그의 그러한 능력이 집약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작인 <엘라의 계곡>은 약간 아쉬웠는데 <쓰리 데이즈>는 다시금 그의 명성을 느낄 수 있게 하더군요. <크래쉬>의 요술망토, 교통사고 에피소드와 같이 보는 동안 손에 땀을 쥐게 하다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이 영화에도 잘 표현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퍼키' 장면이나 지하철역 장면, 검문소 통과 장면 등은 짜임새 있는 연출만으로도 관객들로 하여금 써스펜스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위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묘사에만 치중하는 얼치기 연출가들이 눈여겨 봐야할 부분이죠. 폴 해기스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 또한 위에서 얘기한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존이 사이가 좋지않은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는 장면은 별다른 설명없이도 잔잔하고 묵직한 울림을 이끌어내죠.
존과 라라의 갈등으로 그녀의 결백에 대한 진위가 흐릿해지는 대목 역시 인상적입니다. 이미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녀의 결백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버린 존과 달리 관객들에겐 그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는데 영화는 처음부터 진실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다가 중반에는 한 번 크게 뒤흔들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흐름에 있어 끝까지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연출이었지만 이어지는 존의 터프한 행각과 더불어 윤리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존의 행동의 원동력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아내의 결백보다는 자신의 가정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이기적인 목적이 앞서게 됩니다. 그 와중에 비록 악당이긴 하지만 애꿎은 희생자들도 생기게 되죠.
하지만 존을 탓하기엔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평범한 우리들로선 가늠하기도 쉽지않습니다. 이런 경우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비난의 화살을 경찰에게 돌리는 거죠. 타성에 젖은 부실한 수사로 화목하던 한 가정의 행복을 무참히 깨뜨려버린 경찰은 뒤늦게서야 "경찰답게 일 좀 해보자"며 몇 년전 라라의 진술을 떠올리며 아주 약간 성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비까지 맞아가며 끙끙댔으니 그들에겐 아주 큰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덧.
국내판 포스터에 러셀 크로우의 이름과 함께 '<테이큰> 리암 니슨'이라고 써 있는 것은 완벽한 낚시입니다. 이 영화에서 리암 니슨이 등장하는 장면은 단 한 씬. 어떻게든 액션을 강조해 관객의 눈길을 끌어보고자 하는 수입사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한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오리지날 포스터를 찾아보니 당연하게도 러셀 크로우의 이름만 나와있더군요.
이 영화 국내 배급이 롯데더군요. 때문에 CGV에선 띄엄띄엄 교차상영은 기본, 상영관도 가장 작은 관에서 상영중입니다. 극장에서 보실 분들은 서둘러야 할 듯. 전체적으로 이번 연말 극장가는 다른 때보다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는 편인데 드라마 장르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OST 중 Moby의 Mistake
영화에서 듣게 되는 Moby의 곡은 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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