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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그 사람들 - 10.26 그날의 기록
    영화 이야기/감상 2009. 10. 26. 13:49



    그때 그 사람들
    감독 임상수 (2005 / 한국)
    출연 한석규, 백윤식, 송재호, 김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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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대의 그때 그 사람들.

    영화 외적인 잡음이 더 많은 영화. 21세기가 넘은 이 시점에 일부분이 새카맣게 잘린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게될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단순한 시간의 흐름으로 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의 어르신들은 기어코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화면을 삭제하라는 바보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 이유는?

    다큐멘터리로 인하여 관객들이 이 영화를 모두 진실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는 것. 바로 우매한 우리 대중들이 영화를 본 후 혼란스러워 할 것을 걱정한 어르신들의 눈물겹도록 짠한 배려심에서 우러나온 결정이었던 것이다. 아... 고마워라~ 

    그렇게 영화는 시커먼 화면과 함께 시작된다. 첫 장면부터 쭉쭉빵빵 언니들이 비키니 상의를 훌러덩 벗고 나오는 - 눈은 즐거웠지만 배경이 10월 26일이니 만큼 퍽이나 난데없었던 비키니 -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진지한 정치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하긴 아직까지도 그를 추수 작업후 농민들과 함께 논두렁에 앉아 막거리를 즐기는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다고 열렬히 추종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그가 사실은 화려한 안가에서 자신의 딸보다 어린 여대생을 옆에 끼고, 시바스 리갈을 즐기던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진지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이 조금 더 진지한 영화였음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대에, 비상식의 정점에 있던 사건을 그렸다지만 난데없이 홍록기가 튀어나오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한 것들을 블랙코미디라고 불러도 되는지도 의문이다.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블랙코미디적 요소는 딱 한가지. 대통령 앞에서 미스 조가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율동과 함께 부르고, 술에 취한 대통령이 낄낄대면서 즐기던 장면이다.

    <거짓말이야>는 그 시절 말도 안되는 이유로 금지곡 목록에 포함되었던 수많은 노래중에 하나. 오늘날 우리를 가엾이 여겨 손수 이 영화의 몇 장면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린 어르신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어르신들도 대중들이 저급한 문화에 노출돼 정신적 혼란을 겪을 것을 우려해 손수 금지곡도 추려주시곤 하셨단 말씀이다. 헌데 꼰대들의 우두머리가 그 금지곡을 들으며 낄낄대고 있으니 그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풍자라고 꼽기에 충분하다. 

    물론 18년동안 서민적인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그가 여대생 가수와 젊은 여자의 시중을 받으며 양주를 홀짝거리다가 고향 후배이기도 한 총애하던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고, 경호실장이라는 사람은 총 한 자루도 갖고 있지않아 경호를 하기는 커녕 화장실로 제 몸을 숨기기에 바빴던 실제 상황 자체가 가장 지독한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독의 연출이 개입되지 않은 실제 상황. 블랙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블랙코미디는 보이지 않고, 몇 개의 저급한 코미디만 보였던 것은 아마 그런 실제 상황 자체가 지닌 엄청난 비상식에 압도당했기 때문일런지도.

    다시 말해 소재가 된 현실에 압도당한 영화. 그날은 충분히 그럴만 했다.  

    임상수 감독은 그러한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긴 했으되, 특별한 뭔가를 보여주진 않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그저 그날의 사건을 시간 순서에 의해 재현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여러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김재규에 대한 묘사 역시 표면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 새로운 시각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나름의 해석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임상수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지난 주 <MBC 백분토론>에서는 법원이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을 주제로 다뤘다. 어르신 박정희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아주 꼽게 보고 있는 월간조선의 꼰대 중 한명인 우 머시기인가 하는 아저씨가 토론 중 전화 인터뷰에 응한 임상수 감독에게 그것을 물어봤다. 임상수 감독의 대답이 걸작.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프랑소와 트뤼포의 말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만약 당신이 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찾고자 한다면 내일 아침 당신의 집 우편함을 열어봐라. 그럼 거기에 편지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꼰대에게 보기 좋게 한방 날린 이 말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오고가는 정치적인 억측들은 집어치우고 그냥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는 얘기로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궁금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거 우편함을 열어봐야 되나... -_-? 

    전체적으로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범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 영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데는 동의. 다양한 소재를 무난하게 소화해내는 깔끔한 연출과 편집. 그런 면에서 말이다. 작년 초 실미도와 태극기가 열풍적인 인기몰이를 할때 정동영이 우리의 질곡많은 현대사는 그대로 한국영화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소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적극 동의. 하지만 이렇게 밋밋한 수준의 재현에만 머무른다면 훌륭한 소재를 완벽히 활용한다고 할 수 없을것이다.





    수다.

    1. 백 선생님(왠지 백윤식은 이렇게 불러야 될 것 같다.)과 한석규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이 최고. 특히 한석규는 <넘버3>의 태주와 같은 거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그에겐 이런 거친 연기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 

    쉬리 덕분인지 권총 파지를 정석으로 하고 있는 한석규.


    2. 주 과장이 의지할 데 없이 혼자서 서울의 도심을 내달리는 장면에서 한쪽으로 보이는 조선총독부 건물의 CG는 굿. 밤 장면이라 재현하는데 그다지 많은 노력을 들이진 않았을 걸로 생각되지만 그런 점들을 놓치지 않고 재현시켜 볼거리 하나를 추가시킨 제작진의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3. 10.26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수행비서였던 박흥주 대령과 김재규의 교사 시절 제자이기도 했던 박선호 의전 과장의 극중 호칭은 '민대령', '주과장'이다. 둘의 성을 합치면 '민주'. 임상수 감독의 의도적인 작명센스가 엿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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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2월 9일 개봉 당시에 썼던 리뷰입니다.
    마침 오늘이 '그날'이라 묵혀있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10.26은 우리나라의 현대 정치사에 있어서 말이 필요없이 유명한 사건인데다, 여러번 드라마로 재현된 적도 있어서 대부분의 상세한 내용까지 잘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사건이 워낙 첨예한 내용이다 보니 아직까지 논란거리가 무수히 많기도 하죠. 예전에 MBC에서 방영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그날의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MBC 홈페이지에서 해당 방송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재규, 박흥주 대령, 박선호 과장의 실제 삶은 영화보다 이야깃거리가 더 많더군요.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10.26 궁정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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