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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나의 이야기/식사일기 2010. 6. 1. 13:17
아마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을거다. 누나는 3학년. 짜장면 값이 600원인가 하던 때. 어느날 저녁 엄마가 몸이 좋지않아 밥을 못했다며 누나랑 가서 짜장면을 먹고 오라고 했다. 우린 엄마가 편찮아서 누워 계시던 건 생각도 안하고 짜장면을 먹게 된 기쁨에 우리끼리 룰루랄라 동네 중국집으로 갔다. 다 못 먹으니까 한 그릇만 시켜서 나눠먹으라는 엄마 말씀대로 우리 둘은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당시엔 종종 엄마와 함께 가도 어린 누나와 나는 한 그릇을 두 그릇으로 나눠달래서 먹곤 했다. 주인 아저씨와 친분이 있기도 했지만 그때는 동네 중국집에서 그 정도 요구쯤은 눈살 한 번 안 찌푸리고 들어주던 인심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주문을 받던 종업원 형은 둘이 와서 한 그릇만 시킨다며 어린 우리에게 눈치를 줬다.
그 중국집엔 나보다 어린 남매가 있었는데 이름이 호열이와 연희였다. 아마 5살, 4살 연년생 남매였을거다. 짜장면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누나는 가게 앞에서 그 애들을 데리고 놀았다. 나도 밖에 나가서 같이 놀고 싶었지만 한 그릇만 시켰다고 타박을 주던 종업원 형이 무서워서 눈치만 보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짜장면이 나오자 내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종업원 형이 "야 너네 누나 어딨어? 짜장면 시켜놓고 어디간거야!?" 이러면서 짜증을 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들어서 밖에 있던 누나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나눠달라고 했던 짜장면은 그냥 한 그릇으로 나왔다. 종업원 형이 우리 얘길 무시했던거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나눠달라고 얘기했더니 주방에 있던 호열이네 아빠가 직접 나오셨다. 호열이네 아빠는 원래 잘 알고 지내던 우리를 알아보고 "아~ 너네였구나! 잠깐만 기다려" 이러더니 짜장면을 직접 비벼주고, 다른 그릇에 나눠주기까지 했다. 호열이네 아빠가 그렇게 직접 우리를 챙겨주자 나는 갑자기 우쭐한 기분이 들어서 우리를 무시하던 종업원 형아를 거만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린 마음에 뭔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종업원 형은 그런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냥 티비만 쳐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한테 잘해주던 호열이네 아빠는 몇 년 후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호열이네 엄마는 어린 남매와 함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 쯤 호열이와 연희도 20대가 훌쩍 넘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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