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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티앙이라 불린 사자
    나의 이야기/견문록 2010. 3. 24. 09:42
    <크리스티앙> - 크리스티앙이라 불린 사자





    지난 2008년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동영상이 있다. 유투브에 올라온 그 동영상의 첫 장면에선 전형적인 70년대 풍의 두 청년이 언덕 위의 사자를 보며 웃고 있었다. 사자는 어슬렁거리며 언덕을 내려오다가 두 청년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그들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어 큰 얼굴을 마구 부벼댔다. 사자는 뒷 발로 선 키가 두 남자보다 훨씬 컸지만 하는 짓은 영락없이 주인을 만나 반가운, 애교 많은 개의 모습이었다. 그 사자의 이름은 크리스티앙. 두 남자는 어린 크리스티앙을 런던의 헤롯 백화점에서 구입해 키우다 아프리카로 돌려 보낸 앤서니 에이스 버크와 존 렌달이었다. 그 장면은 크리스티앙과 두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헤어진 지 1년여 만에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 <크리스티앙>은 바로 그들의 얘기다. 애초에 그들의 얘기는 71년 당시 책으로 발간되고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는데, 2008년에 누군가가 유투브에 올린 동영상은 바로 그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다. 그 동영상으로 인해 크리스티앙의 얘기가 다시금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되고 이번에 책도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사실 요즘 나는 책을 거의 사서 읽지 않는다. 가끔 콩심이에게 선물 하기 위해 책을 살 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을 이용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즉흥적인 충동구매였다. 지난 주 어느 날 밤. 나는 정인의 첫 솔로 앨범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인터넷 서점에서 충동구매를 하게 됐다. 그런데 CD만 구입할 경우 배송료가 추가됐다. 신간 서적을 한 권 더 사면 배송료가 무료였는데 배송료 2천원을 부담하느니 책을 한 권 사는 것이 낫겠다싶어 신간서적 페이지를 클릭한 순간 가장 먼저 이 책이 눈에 띈 것이다.

    살때는 부록이 있는지 몰랐다.



    크리스티앙의 동영상은 나도 무척 감동하며 봤었기에 이 책을 보자마자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읽고서 콩심이에게 줄 생각이었다. 콩심이도 동물을 무척 좋아하고 크리스티앙의 동영상도 함께 보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받고나니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겉표지 안의 빨간 색 바탕에 깔끔한 금색 제목과 사자 모양이 박힌 양장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책 안에 크리스티앙의 귀여운 사진이 제법 많이 포함된 것도 좋았다. 게다가 살 때는 몰랐는데 사자의 털 색깔과 같은 금빛 스웨이드 표지로 된 작은 다이어리가 부록으로 딸려 있었다! 사실 나는 손에 들고 읽기 불편하고 괜히 가격만 올려 받으려는 수작인 것 같아 양장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디자인은 보자마자 나를 매료시켰고, 아직 읽지도 않은 이 책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마치 팬시 제품을 수집하는 여중생마냥 이 책을 갖기로 했다. 그래서 애초에 읽고나서 콩심이에게 주려던 계획을 바꿔 바로 한 권을 더 주문해 콩심이에게 바로 배송시켰다. 미적 감각이 까탈스러워 사람이나 물건이나 웬만하면 예쁘다고 하는 법이 없는 콩심이도 이 책을 보자마자 완전 예쁘다고 감탄했다. 

    책의 내용은 1969년 말. 호주 출신의 자유분방한 두 청년, 앤서니와 존이 런던의 헤롯 백화점에서 크리스티앙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런던의 헤롯 백화점은 돈만 있다면 못 살 것이 없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새끼 사자까지 가격표를 붙여놓고 팔고 있었던 것이다. 백화점에서 사자를 팔다니!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되는 그 광경에서 6, 70년대의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앤서니와 존은 이전까지 사자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크리스티앙을 보는 순간부터 그 어린 사자에게 푹 빠져들어 사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세계 여행을 즐기다가 잠시 런던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던 그들에겐 사자를 키울만한 조건이 여의치 않았지만 그들은 젊고 자유로운 패기로 크리스티앙을 구입하는데 성공한다.


    책도 예뻐야 좋다.


    그후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가구점에서 크리스티앙을 키우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그들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런던 킹스 로드의 명물이 된다. 앤서니와 존이 어린 크리스티앙을 키우는 동안 묘사되는 70년대 초 런던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유롭고 들떠 있었다. 당시의 그런 분위기가 그들로 하여금 크리스티앙을 키우는 것을 가능케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그들이 알고지내던 사람 중에는 해롯 백화점에서 퓨마를 구입해 기르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크리스티앙을 구입하고 3년 후인 1973년부터 영국에서 멸종위기동식물보호법이 발효돼 해롯 백화점은 더 이상 희귀한 동물을 팔지 않게 된다. 희귀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무분별한 소유욕에 규제가 가해지고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앤서니와 존 역시 크리스티앙을 기르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체격이 커지면 더 이상 런던의 가구점에서 크리스티앙을 기르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고 그때가 돼서 크리스티앙을 동물원으로 보내버리면 그만인가 하는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은 여러가지 고민을 했지만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일단은 어린 크리스티앙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를 즐겁게 하는데 매진하기로 한다. 하지만 크리스티앙이 자랄 수록 그들의 고민도 커져갔는데 문제는 의외의 순간에 해결됐다. 암사자 엘자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내용의 영화인 <야성의 엘자>의 주연 배우이자 부부인 버지니아 매캐너와 빌 트래버스가 우연히 가구점에 물건을 사러 들렀다가 크리스티앙을 보게 된 것이다. 빌은 존과 앤서니로부터 그들이 크리스티앙의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에게 <야성의 엘자>의 감독인 제임스 힐과, 그 작품의 실제 인물인 조지 애덤슨을 소개시켜준다. 조지 애덤슨은 케냐에서 사자의 야생 복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앙에게 본연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후 크리스티앙은 런던의 킹스 로드를 떠나 빌의 집 마당 울타리에서 지내며 아프리카행을 기다린다.

    병아리와 함께 부활절 사진 촬영중인 크리스티앙


    꽤 질 좋은 부록 다이어리, 다이어리 안쪽에도 사진이 있다.


    이후엔 존과 앤서니가 크리스티앙을 아프리카로 데리고 가 조지 애덤슨과 함께 크리스티앙의 아프리카 정착을 돕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곳에서 크리스티앙은 처음으로 다른 사자와 마주하게 되고 점차 사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크리스티앙이 다 자란 숫사자 보이와 어린 암사자 카타니아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그린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다. 크리스티앙은 무리를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끝내는 잘 적응해 조지의 캠프를 스스로 벗어나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쉽게 읽히는 책이다. 일단 분량이 그리 많지않고 사진까지 있어서 쉬엄쉬엄 읽어도 한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크리스티앙의 생활을 중심으로 씌여졌기 때문에 크리스티앙의 재롱을 상상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페이지 수가 훌쩍 넘어가 있었다. 처음 크리스티앙이 등장하는 유투브 영상을 봤을 땐 무척 감동했으면서도 대체 저게 어떤 상황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당시 동영상 클립에 있던 짤막한 자막으로는 1분이 조금 넘는 그 동영상에 대해 궁금증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크리스티앙의 얘기를 모두 접하고 다시 유투브에 가보니 예전에 봤던 동영상말고도 여러가지 동영상이 있었다. 그 동영상들에서 크리스티앙이 존과 앤서니의 엉덩이를 물고 늘어지는 장면이나, 아프리카에서 어른 숫사자 보이에게 복종하는 모습 등 책에서 그려진 모습들을 그대로 다시 볼 수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마치 강아지처럼 존과 앤서니에게 폴짝 뛰어 안기는 장면은 특히 흐뭇했다. 크리스티앙이 살던 70년 런던 킹스 로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모두 크리스티앙과 존, 앤서니의 재회하는 모습으로 다시금 화제가 된 크리스티앙의 다큐멘터리의 일부였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나, 예전에 크리스티앙의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한번씩 찾아봐도 좋을 듯.




    사실 나는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나머지 사자에 대해선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다. 특히 무리를 이루고 그 위에 군림하는 숫사자는 폭군으로 여겨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크리스티앙은 내가 갖고 있던 사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었다. 사자가 고양이과 동물답지않게 애정 표현에 능하고 유쾌한 동물이란 것을 크리스티앙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크리스티앙의 모습만 보면 사자는 고양이과 동물이라기 보다는 개에 가까웠다. 주인을 보면 반가워서 달려들어 마구 부비부비를 해대고, 무릎에서 내려가려고 하질 않는... 그러고보니 무리생활을 하는 것도 개과 동물의 습성아닌가. 고양이과 동물 중 사자말고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 또 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크리스티앙을 통해 느끼게 된 이런 친근한 모습 또한 지극히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 본 또다른 편견일런지도 모르겠다. 사자가 애교가 없고 유쾌하지 않으면 어떻단 말인가.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가 사람에게 애교를 부린다는 사실은 사자의 생존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사람들이 크리스티앙과 같이 인간에게 길들여져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사자의 모습을 접하게 되면 야생 사자의 생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존과 앤서니가 크리스티앙을 기르며 정이 들수록 크리스티앙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티앙과 두 사람의 재회 동영상이 화제가 된 후 만들어진 방송. 제임스 힐이 감독한 크리스티앙의 다큐멘터리 화면에 현재의 존과 앤서니 그리고 크리스티앙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덧붙인 방송이다. 크리스티앙이 모라비아 교회의 정원에서 뛰어노는 장면에서 아프리카에서 어른 숫사자 보이와 함께 지내는 장면까지 책에 등장한 내용을 모두 볼 수 있다. 파트2 부터는 아래 링크를 누르면 볼 수 있음.

    part2   part3   part4  part5 


    그밖에 관련글 :  서울대공원 동물원 - 잠자는 동물들
                          서울대공원 동물원 - 호랑이
                          서울대공원 동물원 - 호랑이들의 식사 시간



    크리스티앙 - 10점
    앤서니 에이스 버크.존 렌달 지음, 강주헌 옮김/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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