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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우시절 - 단편으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멜로
    영화 이야기/감상 2009. 10. 19. 08:30




    중국 사천성의 청두(맥주로 유명한 칭다오와 다릅니다). 두산 인프라코어의 팀장 박동하(정우성)가 이곳으로 단기 출장을 옵니다. 현지 지사장(김상호)의 안내로 청두의 유명 관광지인 두보 초당을 둘러보던 박동하는 그곳에서 미국 유학시절 친구인 메이(고원원)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곳의 가이드로 일하고 있던 메이와 박동하는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워합니다. 그런데 유학 시절 둘이 사귀었고, 키스도 했고,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쳐줬다고 얘기하는 박동하와 달리, 웬일인지 메이는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저 둘은 평범한 친구 사이였고 자신은 자전거도 전혀 탈 줄 모른다고 얘기하죠. 메이가 그렇게 부인하자 박동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연락도 하지 않던 유학시절 친구에게 전화해 당시의 일을 물어보기까지 합니다.

    둘은 정말 사귀었던 사이였을까요? 그렇다면 메이는 왜 과거를 부정할까요? <호우시절>은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남녀의 서로 다른 기억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흥미롭게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고 데이트를 하며 다시 만나게 된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끌리지만 여전히 메이는 동하를 대하는데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하는 기색이 있습니다. 메이가 왜 그랬는지는 영화 후반에 극적으로 밝혀집니다.  





    저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팬들이 그렇듯 허진호 감독의 영화 네 편중 <외출>을 빼곤 모두 감명깊게 봤지요. 그의 영화에 나타나는 연애, 실연, 상처 이런 것들에 관해 무척 공감하곤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봄날은 간다>와 <행복>을 볼 때 제 상황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상태여서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개인적인 상황을 제쳐두고 생각해봐도 허진호는 만남의 설렘에서부터 이별의 상처까지 연애의 단계별 감정을 무척 잘 표현하는 감독입니다. 그런데 <호우시절>은 좀 아쉽더군요. 함량미달의 멜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박동하와 메이가 우연히 재회한 후에 보여주는 행동과 감정들이 그리 공감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둘이 처음 만난 장면에서 반가워하는 모습들은 충분히 자연스러웠지만 이후에 메이가 과거를 부정하는 대목과 그에 대한 박동하의 반응. 그리고 둘이 다시 연인스러운 감정들을 나누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더군요. 공감이 되지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짧은 며칠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을 보면 모두 계절의 흐름과 함께 두 사람의 감정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식으로 연인들이 느낄 수 있는 연애의 다양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허진호 감독의 장점이라 할 수 있죠.


    나랑 키스를 했었다고? 그럼 지금 해봐.



    그런데 <호우시절>의 주인공들은 이미 과거에 연인이었다가 우연히 재회한 사이인데다, 함께 보내게 되는 시간마저 짧기 때문에 처음부터 둘의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할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주인공들이 청두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과거에 대해 무릎맞춤하는 동안 영화는 이미 종반을 향해갑니다. 그 과정에서 메이의 사연이 드러나지만 여전히 둘의 감정은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한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박동하와 메이가 나누는 감정이 옛 연인을 다시 만나 설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이국에서의 들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와 거기에 적당히 즐기면서 맞장구 쳐주는 여자의 그것인지 알길이 없는 겁니다. 당연히 멜로영화에서 다루는 내용이라면 전자여야 하겠지만 <호우시절>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에 공감이 되지 않다보니 후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호우시절>의 드라마가 이렇게 약한 까닭은 이 영화의 태생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원래 <호우시절>은 지난 해 사천성 지역을 휩쓴 지진 피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도로 기획된 3부작 옴니버스 영화 <청두, 사랑해>의 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장편으로 바뀌면서 <청두, 사랑해>에서 빠졌다고 하더군요. 애초에 옴니버스 영화의 한 편으로 기획된 작품을 장편으로 늘려놓은 셈이니 드라마가 약할 수 밖에요. <호우시절>이 원래의 기획대로 <청두, 사랑해>의 한 편으로 완성됐다면 지금보다 더 좋았을 듯 합니다. 옴니버스의 짧은 한 편이라면 이야기의 얼개가 좀 약해도 예쁜 화면이나 분위기만으로도 여운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우시절>은 장편인데도 분위기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듭니다. 때문에 100분이라는, 멜로영화로서 짧지않은 상영시간동안 청두의 관광지 풍경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는 영화가 돼버렸습니다.





    수다


    1.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정우성과 고원원이 멋진 관광지 배경과 어울려 말 그대로 화면 가득 뽀샤시합니다만 단지 배우들의 뽀샤시한 모습을 보기위해서라면 일부러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TV 앞에 앉아 주구장창 CF를 보는 것이 낫겠죠. 실제로 <호우시절>에선 정우성이 등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다가 올림푸스 DSLR 광고로 써도 될만한 장면도 나옵니다. 국내 관객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고원원도 '사천 미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 만큼이나 예쁘더군요. 



     오마주인가요?


    2. 그러고보니 허진호표 멜로 중 가장 별로였다는 평을 받는 <외출>도 두 남녀의 짧은 시간동안의 관계를 다루고 있군요. 허진호 감독의 약점일까요? 그의 연출 스타일이 느린 듯 하면서 긴 호흡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긴 하죠.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는데는 적합하지 않은가 봅니다.  


    3. 사실 이 영화는 개봉 첫 주에 봤는데 1주일이나 지나서 리뷰를 썼네요. 별로 만족스럽지 못해서 리뷰를 쓰고싶지가 않았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들이 모두 별로이다 보니 리뷰도 거의 부정적인 것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밤 중에 목이 말라 콜라 두 잔은 연거푸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려서 뭐라도 안하면 안되겠더라고요. 커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잠만 잘오는 둔한 제 신경계통이 웬일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던 걸까요? 앞으로 리뷰를 쓸 때는 콜라를 마셔야 할 듯.


    4.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봄날은 간다>, <행복>의 리뷰도 읽어보세요.

    2009/02/10 - [영화 이야기/감상] - 봄날은 간다 - 심심한 스토리에 담긴 연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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