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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말 시상식, 변해야 산다
    남의 이야기/휴식 2008. 12. 31. 12:28



    뜨거운 연말 시상식, 논쟁의 시작

    며칠 째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으로 인터넷 여론이 시끌벅적하다. 한 방송사의 시상식이 끝날 때마다 이런저런 구설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가장 큰 이슈는 각 부문 대상 수상자에 관한 얘기다. 수상자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보기에도 민망한 주제들이 연일 시끄럽게 쏟아지고 있다.

    그 시작은 MBC 방송연예대상이었다. 이틀 전 있었던 KBS 연예대상에 이어 MBC에서도 강호동이 대상을 수상하자 유재석의 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들은 유재석이 강호동에 밀려 대상을 수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강호동의 대상 수상을 비난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강호동의 대상을 유재석에게 반환하라는 청원을 다음 아고라에 내기도 했다. 

    MBC 연예대상, 연기대상 결과에 대한 항의성 청원 출처 - 미디어다음 아고라 게시판



    한 쪽에선 올 해 유재석의 MBC에서의 활약은 작년에 비해 부족한 감이 있었다면서 강호동 대상 수상의 정당성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런 류의 시상식은 애초에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누가 수상한다 해도 여러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방송사 측이 계산한 연예인의 공헌도와 팬들의 선호도가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수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심지어 반환 운동까지 벌이는 일은 극성스러운 팬덤 문화의 전형이다. 


    방송사의 트로피 팔아 먹기

    그런데 이렇게 과열된 팬덤만이 문제는 아니다. 매년 시상식의 주체인 각 방송국들은 자신들이 수여하는 상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행태를 보여왔다. 올해 MBC 연기 대상은 그러한 행태의 정점에 이른 모습을 보여주며 네티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나친 '에덴의 동쪽 밀어주기'가 문제였다. MBC로서는 에덴의 동쪽이 250억의 제작비가 소요된 대작이고 시청률까지 높으니 연기대상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배려를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 출연진들의 싹쓸이 수상도 모자라 송승헌에게 대상까지 챙겨준 지나친 배려로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게 된 것이다.


    MBC 연기 대상을 향한 날 선 비판 출처-블로거뉴스 인기글 목록



    MBC 연기 대상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은 하루 전에 있었던 강호동의 연예 대상 수상에 관한 논란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강호동의 대상 수상에 대한 논란은 냉정히 말하자면 유재석 팬들에 의한 억지성 논란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송승헌의 대상 수상에 대한 논란은 누가보아도 MBC의 삽질로 인한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차이는 연예 대상과 연기 대상의 본질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예 대상이 오락 프로그램의 판도 변화에 따라 과거의 코미디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선 시상식이라는 점과 달리 연기 대상은 여전히 전통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극 연기에 관한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MBC의 이번 삽질은 이미 1 년 전 부터 예상 됐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MBC 연기 대상은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이 받았다. 겨울 연가 이후 최고의 한류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기에는 그 지위가 너무 커져버린 배용준을 캐스팅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MBC가 그의 공로를 인정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때부터 연기 대상의 수여 기준이 배우가 보여준 연기의 질이 아니라 스타성을 가진 배우가 캐스팅에 응하고 드라마의 상업적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송승헌의 대상 수상은 MBC의 입장에선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배용준 못지 않은 한류 스타인 송승헌이 2 년 간의 입대 공백기를 보내자마자 250억 규모의 대작 캐스팅에 기꺼이 응해줬으니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상의 명칭이 '연기 대상'이기에 논란이 불거질 수 밖에 없었다. 연기의 질은 드라마의 시청률이나 판매 수익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BC는 이러한 '연기 대상'의 본질을 무시한 채 방송사에 가져다 준 이익만을 따져 대상 수상자를 결정했기에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MBC의 삽질은 강호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상식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네티즌들의 인터넷 청원 운동을 불러왔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연말마다 반복되는 시상식 행태는 차라리 시상식을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과 같은 방송사 측의 나눠주기식 공동 수상의 남발과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수상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상에 대한 불신 밖에 없다. 방송사가 수여하는 상의 권위가 떨어질 때로 떨어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


    이제라도 트로피는 제자리에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에미상과 같이 TV 부문에 관한 시상식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어차피 우리 나라의 연예 대상이니 연기 대상이니 하는 것들은 극히 협소한 경쟁 체제 위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한 해에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배우들이 얼마나 되던가. 오락 프로그램으로 가면 더욱 심각하다 여기저기 방송 3사에서 안보이는 이들이 없는데 그런 몇 안되는 스타들을 대상으로 대상, 우수상 나눠주다보니 몇 해 째 상을 받는 사람만 계속 받아서 전혀 시상식다운 맛이 없다. 그저 이번엔 유재석이네, 이번엔 강호동이네, 여기선 유재석이네, 이런 정도의 화제밖에 만들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시상식이다.

    연기 대상의 경우 방송사마다 화제작에 따라 배우가 다르기 때문에 연예 대상 보다는 그런 굴레에서 자유롭지만 나눠주기라는 비난은 벗어날 수 없다. 이런 한계는 방송사 별로 나눠서 진행하는 연말 시상식을 통합해 운영하거나 부문별 시상 내역을 최소화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듯 하다. 무슨 연기 대상 한 번 하면서 인기상, 인기 커플상, 10대 인기상,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 등등 별의별 상을 다 만들어서 뿌려대니 보고 있노라면 저게 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 우리 나라엔 텔레비전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백상 예술 대상이 있다. 위에서 얘기한 방송 분야의 시상식은 이러한 통합 시상식에게 넘기고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은 지금과 다른 성격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방송사마다 진행하는 시상식의 문제점을 보면서 나름대로 바람직하게 변한 경우로 가요 대상이 떠올랐다. 몇 해 전만 해도 가요 부문 시상식 역시 방송사마다 돌아가면서 가요 대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방송사 별로 신인상 인기상 대상 등을 뽑았지만 우리나라의 가요계 저변이라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해마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요 제전, 가요 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상식의 의미는 거의 없고 한 해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들이 모여 서로를 축하하고 즐기는 축제의 의미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런 축제의 장은 누가 상을 받고 못 받았느냐에 따라 구설이 생길 여지도 없고 말 그대로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 시상식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방송 시상식은 그 분야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뜻 깊은 자리다. 하지만 방송사들의 그릇된 행태로 인해 좋은 뜻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날 서린 비난과 불신만이 남게 돼 버렸다. 지금이라도 변해야 한다.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이 이제부터라도 구태의연한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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