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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형제, 대박 예감
    영화 이야기/감상 2010. 2. 10. 08:30
     

     
    의형제
    감독 장훈 (2010 / 한국)
    출연 송강호, 강동원, 전국환, 박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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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지원(강동원)은 남파 간첩입니다. 이한규(송강호)는 간첩잡는 국정원 요원이죠. 송지원은 북의 지령을 받고 베테랑 암살자인 그림자(전국환)을 도와 망명한 북한 출신 인사(누군가의 육촌으로 나옵니다)를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번 임무를 마치면 북으로 돌아가 두고 온 아내를 만날 예정입니다. 그러나 임무 수행 중 국정원 요원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무사히 현장을 빠져 나오지만 그림자와 헤어지게 됩니다. 현장을 빠져나온 송지원은 그림자와의 재접선 장소로 가지만 그림자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남한에 남게 됩니다.


    이한규는 몇 년째 그림자를 추적하다 그가 드디어 가시권에 들어오자 성과를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에 보고나 지원 요청도 생략한 채 작전에 들어갔다가 부하들을 잃고 징계를 당합니다. 그 와중에 이혼까지 당하죠. 겨우 징계가 끝나자 이번엔 남북 화해 모드에 IMF 구조조정을 빌미로 명퇴를 강요받습니다. 결국 국정원을 떠나게 된 그는 경력을 살려 우리나라 시골로 시집 왔다가 도망친 외국인 아내들을 전문적으로 찾아주는 흥신소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흥신소 이름이 걸작입니다. 명함에는 국정원 마크가 그려져 있고 이름이 무려 "인터내셔널 태스크포스"


    여린 마음 간첩



    이 둘은 6년 뒤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서로를 한 눈에 알아봅니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은 자신을 모른다고 생각하죠. 둘은 이한규의 제의로 함께 살며 흥신소 일을 하게 됩니다. 이한규는 송지원을 통해 간첩단을 엮어 신고 포상금을 한 몫 단단히 챙길 심산이고 송지원은 아직도 이한규를 국정원 과장으로 생각해 그의 동태를 북측에 보고하고 배신자를 찾아내려고 하죠. 이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어둡지 않게 그려집니다. 제목이 <의형제>인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전개가 예상되는데 제목이 갖고 있는 분위기와 달리 괜히 무게를 잡거나 신파적인 모습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의형제>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순전히 송강호 때문에 본 영화입니다. 저에게 송강호는 단지 그가 출연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배우죠. <의형제>가 <영화는 영화다>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데뷔한 장훈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 정도만 듣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예고편도 언뜻 보기만 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나온다기에 저는 남과 북의 첩보원들이 제3국에서 만나는 설정을 예상했어요. 그 정도로 별다른 사전 정보나 기대 없이 보러 갔는데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75년 생 젊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이 돋보이더군요. 


    하루 더 신자



    인상적인 것은 긴장감을 느끼며 봐야하는 대목과 편하게 보는 대목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도입부와 결말부의 추격신은 웬만한 스릴러 영화 못지않게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영화 중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부담없는 코미디 영화처럼 편안한 웃음을 줍니다. 비록 지나치게 샤방한 엔딩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근래에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나았습니다. 입소문 타고 최소 500만 이상.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인데다 송강호, 강동원 두 주연배우의 힘으로 700만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단평. 지금부터는 조금 자세히 스포를 포함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의형제>에서 송지원(강동원)은 김일성 군사 대학 출신의 엘리트 간첩입니다. 추격 실력이나 격투 실력, 그리고 요리 실력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국정원 과장인 이한규(송강호)를 능가합니다. 간첩 잡는 일을 밥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이한규에 비해 김일성 군사 대학 재학 시절 사사했던 교수의 자수 권고에 "교수님께서 제게 가르쳤던 사상을 배반하라는 겁니까!"라며 단호하게 거부할 정도로 사상 무장도 투철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린 마음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죠.

    이한규(송강호)는 틈만나면 빨갱이 타령을 입에 달고 살지만 조직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도는 그다지 없어보입니다. 암호 해독 프로그램을 잘못 건드려 에러가 나게 만들고,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과 공을 나누기 싫어 무리해서 작전을 진행하다 팀원을 희생시키는 것을 보면 국정원 요원으로서의 실력도 그다지 뛰어난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국정원에서 나온 지 한 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를 상관처럼 모시는 전 부하의 존재나, 전향했다가 폐인이 되어버린 전 북측 요원을 개인적으로 챙기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좋은 것 같습니다. 


    경력을 살려서 저와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요?



    이렇게 서로 다른 송지원과 이한규가 한 집에 살면서 보여주는 드라마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 가까워지죠.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상대방에 대한 경계는 놓지 않고 있습니다. 송지원과 처음 한 집에 살게 된 날 이한규는 한 숨도 못 잘 정도로 송지원을 경계합니다. 반면에 송지원은 대범한 편입니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송지원과 이한규는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둘을 아주 쉽게 북과 남의(이거 북남이라고 썼다고 저 빨갱이 취급 받는 건 아니겠죠;;) 상징으로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받아 온 씨암탉을 직접 잡아 백숙을 만드는 송지원과 달리 이한규는 쉬는 날 밖에 나가서도 햄버거만 찾습니다. 심지어 예전 부하를 만나는 바에서도 햄버거를 먹어요. 아. 송지원을 고용하던 날도 둘은 햄버거 가게에서 만났군요. 이한규가 햄버거를 권하자 송지원은 퉁명스럽게 "저는 그런 거 안먹습니다."라고 말하죠. 어떤 면에선 지나치게 도식적인 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송지원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순된 점들이 보입니다. 송지원은 자신의 당성에 대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강직한 인물입니다. 자신에게 자수를 권고하는 은사에게 화를 낼 정도이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자신은 당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요. 송지원이 이한규의 정체를 국정원 과장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도 이한규의 동태를 북에 보고하고 배신자를 찾아내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죠. 배신이라는 행위에 대한 개인적 결벽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 적극적입니다. 6년이나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지내놓고는 이한규를 만나자 마치 거물을 낚은 것 처럼 행동하거든요. 이한규와 함께 사는 동안에도 언제 북으로부터 지령이 있을지 몰라 늘 가요프로그램만 시청합니다. (TV에 남궁옥분의 재회가 방송되면 지령이 뜹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탈북시키기 위해 적지않은 돈까지 들여가며 노력하죠.  


    꺄악!



    송지원이 자신의 가족을 탈북시키는 행위는 더이상 그가 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송지원 가족의 탈북을 돕던 목사는 송지원이 북에 남겨 둔 가족들을 탈북시킨 다음 자수할 예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송지원의 모순은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까지 이어지며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하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을 때의 얘기. 앞서 말했듯이 장훈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로 인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이런 단점들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송지원과 달리 이한규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 걸핏하면 빨갱이 타령을 입에 달고 사는 전 국정원 과장 출신 흥신소 사장이지만 국정원에 있을 때나 흥신소 사장일 때나 그의 안보관이 투철한 편은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간첩은 자신에게 수입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그림자와 송지원을 잡으려다 부하까지 잃고 명퇴당한 그였지만 송지원과 처음 마주친 상황에서도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신고 포상금을 셈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한규는 6년 전 사건으로 송지원에게 개인적인 원한까지 품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인데 송지원을 만나게 되자 "로또 맞았다"며 기뻐합니다. 얼핏보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이한규가 현직 시절 상관으로부터 "간첩 잡는 일을 밥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너 같은 놈들 때문에..."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수긍이 갑니다. 이한규의 이런 단순한 면으로 인해 그가 송지원의 처지를 알게 된 후 별다른 갈등없이 송지원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의형제로 받아들이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됩니다.


    지원아 난 니 얼굴도 몰라.




    에고... 오랜만에 리뷰를 쓰려니 이것저것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마무리가 안되네요. 아직도 할 얘기가 한참이나 남았는데 말입니다. ㅎ

    <의형제>는 송강호, 강동원 두 배우의 비중이 절대적인 영화입니다. 사실 이한규, 송지원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두 배우의 역할이 더 절대적이죠. 송강호와 강동원은 그 절대적인 역할을 둘 다 훌륭히 해냈습니다. 시나리오인지 애드립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송강호의 능글맞은 대사처리는 <의형제>에서도 단연 돋보입니다. 아마 그런 면에서만 보자면 <살인의 추억> 이후 최고인 것 같습니다. 송강호 특유의 구렁이 담넘어가는 듯한 대사처리는 이한규가 송지원에게 한번씩 은연중에 정체를 알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 특히 재밌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자면 송지원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의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경력을 살려서.."라고 할 때나, 송지원이 추격 루트를 자신보다 잘 짜는 것을 보고 "이런 방법은 어디서 배웠어? 유럽식인가?"라고 할 때가 특히 재밌었죠. 송지원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섭리를 설명하는 장면도 기억나네요. "특종은 니 X구멍에 있다", "짤리면 나한테 와" 이 대사도 <의형제>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대사입니다. 이 정도면 송강호의 팬이 <의형제>를 반드시 봐야만하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강동원은 대사보다는 눈빛, 기럭지 하나로 모든 걸 보여줍니다. 헐렁한 건빵바지에 후즐근한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어도 빛이 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임팩트 있는 장면에선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강동원이 워낙 멋지게 나오다보니 여성팬들의 반응이 무척 뜨겁더군요. 강동원은 군대가기전에 제대로 뽕을 뽑고 가려는 것일까요? <전우치> 한 창 상영중인데 <의형제>까지 동시에 대박. 대단합니다.


    벌써 피비린내가 진동하는구만



    조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특히 그림자를 연기한 전국환의 카리스마는 엄청납니다. "벌써 피비린내가 진동하는구만!" ㄷㄷㄷ 냉혹한 베테랑 킬러의 모습을 제대로 재현하더군요. 대놓고 개그 캐릭터인 고창석도 재밌습니다. <의형제>에서 초반과 클라이막스에 전국환이 등장하는 대목은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대목입니다. 비록 총격 액션 등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만큼은 뛰어났습니다. 특히 마지막 옥상 장면은 한 컷 한 컷이 제대로 꽉 짜여져 있는데다 반전까지 있어서 정말 긴장하고 봤습니다. "지원이 너..! 어휴 미련한 자식.."

    <의형제>의 액션 묘사는 조금 아쉬운 편이지만 제작비가 35억원이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정도만 나와준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느 강동원 인터뷰를 보니 제작비가 부족해 촬영현장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김밥으로 떼운 적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송지원이 지령을 받는 장면 등이 꽤 디테일하게 묘사된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분들이 <의형제>의 엔딩을 아쉬움으로 꼽습니다. 저 역시 <의형제>의 엔딩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직전의 비장한 분위기와 전혀 매치가 안되더군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상 송지원이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비행기안에서 그의 가족들까지 보여주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더군요. 밥을 푸던 이규한이 두 그릇을 퍼 식탁 맞은 편에 앉은 송지원에게 주는 식으로 끝내거나 편지를 읽고 마무리 했다면 더 깔끔했을 것 같습니다. 현상금 6천만원이 걸린 베트남 갱단 보스가 이한규의 직원이 됐다는 설정 역시 무리한 개그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 곰곰히 생각해가며 무리였다고 여기는 관객들보다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극장을 나서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런게 바로 대중성이고 장훈 감독은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엔딩 중 가장 대중적인 엔딩을 선택한 것이죠. 


    오늘은 축구가 비겨서 살려준다




    마지막으로 연령대가 좀 있는 남자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의형제> 초반 송지원이 지령을 받고 그림자와 접선해 남한에 망명해서 살고 있는 김정일의(?) '육촌'을 암살하는 시퀀스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97년에 있었던 이한영 암살 사건이죠. 이한영은 김정일의 전처였던 성혜림의 조카인데 82년도에 스위스에서 지내던 중 망명해 남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훗날 KBS의 PD로 입사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96년 어머니 성혜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를 하고 책을 발간합니다. 이것이 빌미가 돼 97년 2월 분당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북한 공작조로 알려진 괴한에 의해 피살당합니다. 영화와 차이점이라면 사건 당시 피살당한 사람은 이한영 한 명 뿐이고, 그를 암살한 일당은 2인 1조로 알려졌지만 현장에 흘린 권총탄피를 제외하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당시 안기부는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한 실체도 파악하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았었죠. 

    <의형제>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이 영화를 보다가 실제 있었던 사건이 소재로 등장해 좀 놀랐습니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관객들이나 여자분들은 그 대목이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의형제>의 엔딩 크레딧에 "도움 주신 국가 정보원에 감사"를 표시하는 멘트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송지원이 간첩 활동을 하는 모습이 꽤 디테일하게 묘사됐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런 부분이 국정원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영화에서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전혀 긍정적으로 그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원이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이한영 피살 사건만 해도 국정원에게 있어선 치욕으로 기록되고 있는 사건인데 영화에선 그 사건을 더욱 극적으로 국정원의 삽질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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