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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정 아파트 풍경 #1나의 이야기/대화 2010. 3. 19. 08:00
2008년 4월의 어느 맑은 날 오후.
사람들이 떠나간 철거 예정 아파트엔 아직 이사할 곳을 마련하지 못한 할머니들과
큰 나무, 꽃, 풀이 많았다.
아파트 단지 양로당 앞뜰에 난 길로 할머니 한 분이 올라오셨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힘에 부치셨는지 할머니는 잠깐동안 쪼그리고 앉았다가
길을 가로질러 양로당으로 들어가셨다.
2010년 1월.
양로원의 할머니들도 모두 떠났고,
할머니들의 세월만큼 그 자리에서 자란 큰 나무들은 흉측한 밑동만 남아 있었다.
본격적인 철거에 앞서 큰 나무들이 모두 베어진 것이다. 기분이 휑했다.
그 큰 나무들을 저리 무자비하게 베어낼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아마존에서 몇 백년을 산 나무들도 하루 아침에 베어버리는 것이 사람인데,
어디 나무뿐이랴. 이익이 된다면 사람마저 마구 몰아 내쫓는 것이 재개발 아니던가.
그런데도 나는 순진하게 나무가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한때는 북적댔을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몇 십년을 살아온 나무들이기 때문일까.
나는 그 나무들이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그 자리에 있다가
몇 년 후 공사가 끝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무들은 가장 먼저 베어졌고,
곧 허물릴 차가운 아파트만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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