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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나의 이야기/견문록 2012. 8. 4. 05:34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저자
    줄리언 반스 지음
    출판사
    다산책방 | 2012-03-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40년 전의 편지 한 통이 불러온 거대한 비극!영어권 최고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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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건 기억에 관한 얘기다. 기억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명징하게 각인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저 쉽게 잊혀지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우리 안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해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고 그것을 진실이라 기억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우리는 스스로의 선의에 대한 확신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겐 쉬이 잊혀졌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리하게 각색된 기억이 다른 이에겐 일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일 수도 있다는 거다. 

     

    작중 화자인 토니 웹스터는 평균적인 삶을 살다 은퇴 후 병원 도서관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는 60대의 대머리 노인네다. 그에겐 그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세상이 온통 자기들 뿐이라는 듯 냉소와 시건방짐으로 가득찬 10대 시절이 있었다. 


    그런 토니의 무리에 전학생인 에이드리언이 합류하게 되는데, 에이드리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좀 오글거릴 정도로 똑똑해서 같은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까지 특별 대우를 할 정도의 아이였다. 에이드리언을 특별한 아이로 여기는 건 토니의 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에이드리언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를 좋아했다. 예를 들면 토니는 고교 졸업 후 친구들과 서로 떨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에이드리언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깝게 지내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는 식이다.  

     

    소설 전반부를 이루고 있는 토니의 고교 시절 이야기는 60년대 영국의 상황임에도 별로 낯설지가 않았다. 줄리언 반스가 십대 시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토니와 에이드리언 일당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이해와 대화 수준이 살짝 오글거리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십대 청소년들이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에너지와 지적 허영을 역사와 철학 같은 인문학적 관심사에 쏟아붓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내게도 다이제스트판도 못되는 두께의 역사 교과서에 갈증을 느껴 서점에서 5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세계사 책을 사다 보며 건방을 떨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물론 요즘 아이들이야 온라인 게임 캐릭터를 키우거나 넘쳐나는 야동을 보거나 등등 즉흥적인 유희거리가 넘쳐나니 에너지가 축적될 겨를도 없겠지만 토니나 내가 십대를 보냈던 시절엔 인터넷이 없었으니.


    소설의 전반부는 마치 성장소설스러운 전개를 보여주다 에이드리언의 자살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시간들을 자기 편할대로 기억하고 있는 60대 토니의 이야기가 후반에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결말, 반전' 등으로 수식되는 이 소설의 사건 자체는 살짝 소름이 돋을 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우린 이미 혓바닥만으로 이수아를 임신시킨 오대수의 이야기에 익숙하기에.

     

    대신 내 신경을 건드린 건 센세이션한 결말보다는 덤덤하게 자신이 살아온 길을 회고하는 토니 웹스터의 태도였다. 그는 에이드리언과 대비되는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후회했다. 아내의 사랑을 잃고, 친구를 잃고,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하다 별 볼 일 없는 60대가 돼버린 본인의 삶을 부정했다. 


    그 역시 전반부의 10대 시절 얘기처럼 대부분의 60대 남성이 공감할 법한 내용으로 느껴졌다. 토니 웹스터의 10대 시절은 46년생인 줄리언 반스의 10대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60대의 토니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한 토니의 삶은 성공한 작가인 줄리언 반스의 삶과는 차이가 있겠지. 

     

    내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는 소설 속 인물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하는 나머지 작중의 모든 상황을 내 경험과 상황에 빗대어 받아들인다는 거다. 심지어 현진건의 빈처의 마지막 대목 중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이 단순한 문장 하나로 혼자서 감정에 복받쳐 콩심이를 얼마나 귀찮게 했던가. 예민하면서도 여린 콩심이에게 억척스러운 빈처 캐릭터따윈 가당치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식으로 토니 웹스터는 나의 폐부를 찌르며 괴롭혔다. 끝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토니. 줄리언 반스의 간결하면서도 예리한 문장은 토니를 평범한 남자들의 대명사로 그려냈다.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은 토니로 늙어갈 것이다. 적당히 변명하고 적당히 잊어가면서.  

     

    어쩌면 에이드리언의 선택이 최선일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셋은 에이드리언 몰래 그의 상황을 이리저리 따져본 후, 하나의 이론을 정립했다. 행복한 가족생활을 영위하려면 애초에 가족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니면 최소한 함께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분석을 하고나니, 우리는 에이드리언이 더 부러워졌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흐리멍덩했고, 인생이 내게 던져주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교훈에 대해 크게 깨달을 깜냥도 못 되었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의 현실에 안주했고, 삶의 불가항력에 복속했다. 만약 이렇다면 이렇게, 그렇다면 저렇게 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냈다. 에이드리언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을 포기했고, 삶을 시험해보는 것도 포기했고,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난생처음, 나는 내 온 인생에 대해 한결 총체적인-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후회의 감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온 어느 하루도 후회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젊은 시절 알게 된 친구들을 잃었다. 아내의 사랑을 잃었다. 즐겼던 야망을 저버렸다. 인생이 너무 성가시지 않기를 바랐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 얼마나 옹색한 일인가.

     

     

     

     

     


    줄리언 반스 이 아저씨. 좀 젊은 시절 사진이긴 한데 까칠하게 잘 생겼다.

    그러고보면 둥글둥글 맘씨 좋게 생긴 작가는 별로 못 본 것 같다.

    딱 봐도 위궤양 약을 달고 살게 생긴 양반들이 글도 잘 쓰는 듯..

    독자의 아픈 곳을 콕콕 찔러가며. 본인들도 괴로웠으니 그만큼 잘 아는 것이겠지.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 역시 20대 초반에 토니와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의 관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토니 입장이었는데 다행이랄까. 내가 겪은 에이드리언은 훨씬 뻔뻔한 녀석이어서

    애초부터 허락 편지 따윈 쓰지도 않았고 관계를 알게 된 나의 추궁에도 모르쇠로 일관했었다.

    결국 소설처럼 베로니카만 안쓰럽게 된 그런 얘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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