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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쥐, 대중과 더욱 멀어진 박찬욱
    영화 이야기/감상 2009. 5. 1. 02:00
    박쥐
    감독 박찬욱 (2009 / 한국)
    출연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김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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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이 3년 만에 신작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박쥐>, 뱀파이어가된 신부 이야기랍니다. 송강호와 김옥빈이 타이틀롤을 맡았습니다. 김옥빈은 과감한 노출을 감행하고 송강호는 성기 노출까지... 단순히 이것만으로도 장안이 시끌벅적 합니다. 이런 시끄러운 얘기들을 일부러 멀리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평일 오후인데도 상영관이 꽉 찼더군요. 아줌마 관객, 시험 끝난 20대 초반 대학생 커플, 딱 잘라서 이렇게 양분할 수 있는 관객들과 함께 <박쥐>를 봤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박쥐>는 제가 함께 본 관객층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화가 끝난후 좁은 통로를 걸어나가며 마구 씨불딱댔습니다. 뭔 영화가 이러냐며.


    사실 원래 그랬었죠,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초창기의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든가 <삼인조>는 멀티플렉스는 물론이고 우리영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경박하던 시절이라 관객들과 제대로 만날 기회조차 없었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은 달랐습니다. 당시 우리 영화계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남북관계를 베이스로한 쫀쫀한 플롯과 곳곳에 담긴 유머, 송강호, 이병헌, 그리고 신하균과 김태우의 열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공동경비구역>은 평단과 관객의 공통된 호평을 받는 좋은 영화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경비구역>이 작품성과 상업성이 동시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되자 박찬욱은 자기안에 꿈틀대는 영화를 향한 자의식의 과잉을 주체할 수 없게 되버립니다. 그렇게해서 탄생된 영화가 <복수는 나의 것>이지요. 지금도 <복수는 나의 것>은 소수 매니아들에게 극찬을 받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복수는 나의 것>을 불편하고 재미없는 영화로 기억하고 있지요. <공동경비구역>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작품 활동의 자율성을 얻은 박찬욱 감독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꼴리는데로 찍은 것이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올드보이> 역시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방식은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 훨씬 대중친화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실로 많은 이들이 <올드보이>를 재밌게 즐겼습니다. <올드보이>는 정말 재밌는 영화였지요. 최민식, 강혜정, 유지태, 오달수. 심지어 한 씬만 등장한 오광록까지도 <올드보이>는 모든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는 듯한 영화였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설정은 일본 만화에서 따온 것이었지만요. 박찬욱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박찬욱 감독의 자신감은 높이 치솟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후에 나온 작품이 <친절한 금자씨>. 이 영화는 이영애의 독특한 연기로 인해 곳곳에 재밌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박찬욱을 <올드보이>로 기억하는 상황에서는 평이 갈릴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박찬욱의 자신감인지 객기인지 모를 연출 욕구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 역시 비와 임수정의 열연에 관계 없이 관객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년. 박찬욱이 <박쥐>를 들고 관객들을 찾아왔습니다.



    앞서 잠깐 말했듯이 <박쥐>는 결코 대중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박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풍경들은 보통 관객들에게 낯선 것들입니다.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LP레코드의 50여년 전 뽕짝은 물론이고, 원형의 테이블에 보라색 테이블보를 펼치고 벌어지는 마작판, 시대를 가늠하기 힘든 한복점 풍경 등. 어느 것 하나 익숙한 이미지가 없습니다. 심지어 <박쥐>의 유일한 아줌마 캐릭터 김해숙이 늘상 끼고 사는 술은 흔한 소주가 아닌 보드카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전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봐왔던 이미지들과 비교하면 비슷한 면도 없지않지만 대부분은 낯선 것들이었습니다. 박찬욱이 미술감독을 쪼아대며 그렇게 생경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지더군요. 물론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도의 문제이지요.

    내러티브의 문제로 들어가면 더욱 심각합니다. <박쥐>는 수많은 이미지와 상징, 은유로 점철된 영화이기때문에 평범하게 영화의 내러티브를 좇으며 감상하는데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이러한 것들은 <박쥐>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따지는데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박쥐>가 당당히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것도 그점을 말해주지요.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고르는 능력이 지극히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박찬욱의 작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그의 영화를 몇 편 봤다면 <박쥐>가 결코 20대 초반 샤방 커플의 데이트용이라든가, 평일 오후 한가한 아줌마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울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그저 송강호 뱀파이어 신부, 김옥빈 노출, 이런 얘기만 듣고 영화관을 찾았다가 툴툴대며 돌아서니까 문제지요. 다시말하자면 <박쥐>가 재미없다해서 박찬욱을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박찬욱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든 것이니까요.

    영화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박찬욱은 언제라도 <공동경비구역>이나 <올드보이> 이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인데 그가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어보인다는 점입니다. 또한 작품 활동을 너무 더디게 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번 <박쥐>의 오프닝 크레딧에 할리우드 간지가 흐르게 만든 유니버셜 픽쳐스도 박찬욱의 <올드보이> 시절의 감각만을 기억한채 투자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유니버셜 픽쳐스가 무슨 인디영화 발굴하는 스튜디오도 아니고 엄연히 메이저 스튜디오니까요. 어쨌든 뭐니뭐니해도 아무 생각없이 박찬욱의 신작을 보러 영화관을 찾는 이들은 한동안 넘쳐날 것이고, 그들이 털어놓는 박찬욱의 작품에 대한 불만도 쉬이 잦아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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