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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벨 - 소통은 언어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
    영화 이야기/감상 2009. 5. 11. 13:03

    바벨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2006 / 프랑스, 멕시코, 미국)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야쿠쇼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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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은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입니다.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에 노한 신이 그때까지 같은 언어를 쓰던 인간의 언어를 다르게 함으로써 탑을 쌓지 못하고 혼란을 겪게 만들었다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죠. 멕시코 출신의 이냐리투 감독은 모로코, 미국, 일본, 멕시코 4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부재와 불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벨]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칸에서 감독상을,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바벨]의 메인카피는 '네 개의 사건이 하나로 이어진다' 입니다. 사실 이렇게 별개의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설정은 웬만한 영화팬들에게는 그다지 색다르게 느껴질 설정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영화들 속에서 단선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시간과 공간이 맞물려 돌아가는 스타일을 봐왔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영화 속의 사건들은 그다지 긴밀한 관계로 얽혀져 있는 편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 문구를 메인 카피로 여기저기에 달아놓는 수입사측의 홍보전략은 좀 이해가 안되는군요. 뭐... 웬만한 액션영화보다 더 정신없이 편집한 예고편에 비하면 저 문구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메인카피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의 사건이 진행되어 갈수록 각각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될지를 곰곰이 떠올려가며 봤죠. 그런데 딱히 와 닿을 만한 연결은 없더군요. 특히 일본쪽 이야기와 연결고리가 드러나는 대목에선 ‘에게~ 겨우 이거야?’하는 허탈감까지 들었습니다. 전혀 감흥이 오지 않더군요.

    하지만 개별적인 에피소드를 놓고 보면 생각할 거리도 많은 편이고, 잔잔한 재미와 인물들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긴장감도 꽤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바벨]에서 보여지는 갈등은 [다른 언어]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라기보다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치에코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딱히 소통의 단절이라고 할만한 상황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만 반복해서 외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오해와 상처를 주는 인물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원인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마음을 굳게 닫은 채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려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더군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처음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리처드와 수잔 부부, 되바라진 동생과 순진한 형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요세프와 아흐메드 형제, 엄마의 자살 이후 아버지를 멀리하는 치에코 등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대부분 정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갈등이 해소되는 모습도 마찬가지 입니다. 각기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고난을 겪으며 갈등에서 벗어나 화해의 단계로 접어드는 모습은 서로 비슷합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인 부부와 일본의 여고생과 달리 모로코의 양치기 형제와 멕시코 출신 유모에게는 갈등의 종점이 비극으로 점철된다는 것입니다. 감독과 작가는 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제3세계의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해피엔딩의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요?

    4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소 어지러운 느낌이 들 정도의 복잡한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것과 달리 영화의 내용은 예측 가능한 형태의 전개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로코의 양치기 형제와 멕시코 출신 유모의 비극도 그다지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양치기 형제가 겪는 비극의 시초가 되는 라이플의 경로나, 16년 동안 미국에서 살아 온 사람을 야멸치게 영구추방 시켜버리는 모습을 보면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선진국의 무관심 혹은 냉정함을 보여줄 의도로 생각되더군요.




    수다1. [바벨]에 대한 호평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특히 브래드 피트에 대해서 그의 경력 상 최고의 연기라고 추켜세우는 얘기도 많던데 그다지 공감은 안되더군요. 이번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거든요. 총에 맞은 아내를 안은 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역시 이미 13년전에 [가을의 전설]에서 보여준 모습과 다르지 않던데... 물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굴에 주름이 늘어 좀 더 관록이 느껴지긴 하더군요.

    수다2.
    요세프와 아흐메드 형제가 거센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바람에 맞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장면은 이 영화 전체를 통털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바로 앞의 비극적인 장면에 이어서 등장하는 다분히 전형적인 편집이었지만 요세프가 울부짖는 모습보다 더 짠했습니다.

    수다3.
    모로코 단체 여행객 사이에서 리처드와 수잔 부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서구의 중노년층 여행객들 사이에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는 젊은 부부라니. 게다가 그들은 분위기 좋은 다른 여행객들과 달리 서로 툭탁거리기까지 하죠. 내용상으로 보자면 리처드가 수잔을 달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 것인데요, 수잔은 모로코와 같은 나라를 매우 불결하게 생각하는 깔끔한 여자입니다. 남편이란 사람이 자기 아내 스타일도 모르고 모로코 여행을 계획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런 아내를 달래줄 생각이었으면 일본 같은 깔끔한 나라에나 갔어야지 왜 좋아하지도 않는 나라에 데려와서 그 고생을 시키는지... 여자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도 있겠더군요.



    바람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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