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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왓치맨, 이 영화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
    영화 이야기/감상 2009. 3. 13. 17:00



    왓치맨
    감독 잭 스나이더 (2009 / 영국, 미국)
    출연 말린 애커맨, 빌리 크루덥, 패트릭 윌슨, 제프리 딘 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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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진대로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은 앨런 무어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적어놓았듯이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그래픽 노블을 뛰어 넘어 하나의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서의 명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때문에 이미 영화화 하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지만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옮기는 작업이 쉽지 않아서 번번히 계획이 취소됐다고 합니다. 계속된 난관 끝에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으면서 <왓치맨>은 드디어 영화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원작의 팬들은 대체적으로 잭 스나이더가 원작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내리더군요. 잭 스나이더는 전작 <300>으로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성공적으로 영화화 했다는 평가를 받았었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왓치맨>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입니다. 어떤 영화를 평가할 때 대중적이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만, 만약 그 영화가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블럭버스터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메이저 스튜디오에 의해 블럭버스터의 외양으로 제작되고 홍보된 영화가 대중성이 떨어진다면 관객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리게 됩니다. 소수의 찬양과 다수의 불만스러운 반응이 동시에 나타나는거죠. <왓치맨>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딱 그런 양상입니다. 

    평소 미국의 현대사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좀 있고 진지한 영화도 즐기는 관객이라면 <왓치맨>이 무척 특별한 영화로 느껴졌을 겁니다. 반면에 슈퍼 히어로들이 통쾌한 액션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영화를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왓치맨>이 지겹고 짜증스러웠을 겁니다. 

    <왓치맨>에 관한 관객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원작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왓치맨>은 1985년이 배경인 작품으로 1986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해 1987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입니다. <왓치맨>에는 작품이 나오던 시기에만 해도 어느 정도 유효했던 미-소 핵군비 경쟁으로 인한 핵전쟁의 공포가 주요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왓치맨>이 처음 출간된 시기에는 꽤 시의적절한 소재로써 독자들의 흥미와 지적인 욕구까지 충족 시켜주었을지 모르지만 20여 년이 지난 요즘에는 일부의 관객들을 제외하곤 먹히지 않을 내용입니다. 이것은 <왓치맨> 원작이 얼마나 큰 명성을 지니고 있는가와는 상관없는 얘기죠.

    애초에 <왓치맨>을 영화화하기로 한 제작진들도 이 점을 감안해서인지 원작의 배경을 많이 손 봤다고 합니다. 원작 속의 닉슨은 조지 부시로, 소련의 핵 위협은 아랍권의 테러 위협으로, 뭐 이런 식으로 각색 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각색은 원작에 대한 열렬한 팬이기도 한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으면서 최대한 원작에 가깝도록 다시 바뀌게 됩니다. 잭 스나이더는 스스로 <왓치맨>의 팬보이임을 자처하는 감독입니다. 그가 <왓치맨>의 연출 제의를 승낙한 이유 중에는 누군가가 원작과 멀어진 각본을 갖고 그대로 영화화할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잭 스나이더의 의도대로 <왓치맨>에는 원작의 주요 설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요,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한 편의 영화에 모두 채우려다보니 러닝타임이 2시간 40분이나 되는데도 구성이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각 캐릭터들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며 진행되다보니 조금 산만한 느낌도 들었고요. 특히 음모의 실체가 드러난 장면에서 악당이 자신의 입으로 구구절절히 그간의 일들에 관해 설명하는 방식은 원작이 나온 시기에 딱 어울리는, 말하자면 쌍팔년도 스타일의 마무리여서 무척이나 김이 샜습니다.

    이렇게 원작의 외양을 그대로 재현한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은 원작의 가볍지 않은 주제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왓치맨과 공권력의 갈등, 정의와 평화에 대한 왓치맨 사이의 의견 대립, 슈퍼히어로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왓치맨의 내면 갈등, 그리고 여기에 인간을 초월해 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왓치맨의 갈등까지, 꽤나 복잡한 이야기들이 한데 얽혀 있습니다. <왓치맨>이 풀어내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은 원작이 나왔을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진지한 내용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내용은 결코 1억 5천만 달러짜리 블럭버스터 영화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각종 흥행기록을 경신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역시 기존의 블럭버스터 영화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만, <다크나이트>는 기존의 히어로 영화와 차별성을 두면서도 대중성과의 조화도 이룬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은 묵묵히 원작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영화관에서 편하게 팝콘을 오물거리며 즐기기엔 너무 무거운 작품이 돼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렇다할 스펙타클한 장면도 없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왓치맨>의 특징들이 어떤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만이 가진 매우 특별한 매력으로 느껴지며 높게 평가받는 요인이 됩니다. 

    그들에게 <왓치맨>은 잭 스나이더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앨런 무어는 원래부터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에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인물이어서 <왓치맨>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든 어쩌든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잭 스나이더가 뚝심있게 원작에 가까운 영화로 탄생시켰으니까요. 할리우드에서 메이저 스튜디오의 간섭을 받으며 이런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왓치맨>에는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을만한 대목이 존재합니다. 바로 대체 역사물이라는 측면에서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인데 특히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이 흐르면서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압권입니다. <왓치맨>의 결성과 해체, 그리고 재결성 과정을 1940년대부터의 미국 역사에 교묘하게 삽입해 보여주고 있죠. 장면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자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의 별명인 '에놀라 게이'는 <왓치맨> 중 1대 실크 스펙터인 샐리 주피터의 이름을 따서 '미스 주피터'가 되어 있고, 종전 축하 퍼레이드에서 찍힌 유명한 사진 '수병과 간호사의 키스'는 <왓치맨> 중 또다른 여자 캐릭터 '실루엣과 간호사의 키스'로 패러디하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왓치맨>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1967년 펜타곤 앞에서 열린 반전시위에서 한 소녀가 총구에 꽃을 들이대는 모습, 앤디 워홀과 트루먼 카포티, 케네디 암살, 미국의 달착륙,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장면에는 무려 복선이!), 후르시초프와 카스트로, 스튜디오54와 데이빗 보위 등이 패러디로 등장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따로 포스팅을 해도 재밌겠네요.

    이밖에 영화상에서도 닉슨 외에 뷰캐넌, 아이어코카 등의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죠. 이런 대체 역사물이라는 전제하의 패러디는 시종일관 진지한 <왓치맨>에서 잠시나마 숨통이 틔이게 하는 장치로도 작용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러한 소소한 재미를 놓치고 만다는 것이죠.











    수다 1. <왓치맨>의 캐릭터 중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는 로어셰크더군요. 부러질지언정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꼿꼿함과 독특한 스타일이 멋졌습니다. 미국에서도 로어셰크는 히어로 캐릭터들의 인기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수다 2. 나이트 아울Ⅱ가 코스튬을 입지 않은 댄 드라이버그일 때의 모습은 마치 수퍼맨이 클라크 켄트일 때를 보는 것 같더군요. 어리숙한 표정으로 안경이나 벅벅 닦고... 애초에 앨런 무어가 <왓치맨>을 처음 구상할 때는 기존의 코믹스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려고 했다고 하니 <왓치맨>의 캐릭터에서 다른 히어로 캐릭터들과 비슷한 모습이 보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겠네요.

    수다 3. <왓치맨>의 장면 곳곳에는 잘 알려진 기성곡이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대체적으로 별로였다는 평을 받고 있더군요. 로리와 댄의 므흣씬에서 흘러나오는 레너드 코헨의 'Hallelujah'는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그밖에 코미디언의 장례식 장면에서 나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g Of Silence'나 베트남전 장면에서 바그너의 'Ride of the valkyries'를 사용한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코미디언이 싸우는 장면과 오프닝 시퀀스에 사용된 넷 킹 콜과 밥 딜런은 적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다 4. 영화 속에서 코미디언의 방 호실은 3001호입니다. 격투 장면에서 코미디언이 쏜 총알이 문에 박히면서 3001호라는 숫자 중 300이 부각되는 장면이 있더군요. 이밖에도 영화 속에는 알고보면 재밌을 내용들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객층이 극히 한정적이라는 것이 문제죠.

    수다 5. <왓치맨>이 기존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와는 다른 작품이긴 합니다만 흥행면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왓치맨>이 블럭버스터 영화로서 흥행을 위해 노력한 여러가지 일들 중 별다른 경쟁 상대가 없는 3월 초에 개봉했다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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