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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
    나의 이야기/동거견 2011. 12. 2. 22:43











    사랑이가 아팠다.

    지난 주 금요일. 자다가 토를 해놔서 배탈인 줄 알고 동네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을 받아왔다. 다음날인 토요일까지 차도가 없어 다시 병원에 가 혈액 검사를 했더니 적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수의사는 면역 매개 용혈성 빈혈(IMHA)가 의심되는 상태고 당장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말이라 수혈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학병원밖에 없다고 했다. 그날 밤. 전북대 동물병원에 가 다시 검사를 하고 수혈을 받았다. 입원이 필요하다고 해 1시까지 수혈받는 모습을 지켜보다 왔다. 당직 수의사는 일단 수혈을 받았으니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던 사랑이가 수혈을 받자 고개도 가누고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다음날 오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사랑이의 상태가 좋아 집에 데려가도 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일주일치 약을 받아서 집에 왔다. 사랑이는 아직 기운이 없어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혼자서 잘 갔다. IMHA는 지속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적혈구 수치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상태에 따라 다시 수혈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사랑이는 수혈 결과 수치가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아직 정상 수치에는 밑돌기 때문에 꾸준히 약을 먹이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화요일 밤에 동네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했다. 수요일 오전에 결과가 나왔는데 썩 좋지는 않았다. 수혈 후 약간 올라갔던 수치가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당장 수혈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상태를 잘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상태가 좋지않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걱정이 돼 수요일 저녁에 전북대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전북대 병원의 수의사도 수치가 낮긴 하지만 당장 수혈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기계에 따라 오차가 있긴 하지만 동네 병원 검사에 나왔던 수치보다는 아주 약간 올라가 있었다. 꾸준히 약을 먹이고 지켜보면 상태가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겉으로 보이는 사랑이의 상태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누워만 있었지만 밥은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갔다. 처방받은 약의 스테로이드 성분이 식욕을 돌게 한다고 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다른 아이들과 같이 총총 뛰어가 짖기도 하고, 평소때와 마찬가지로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목요일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 했다.


    밤에 집에 오니 누나가 사랑이를 안고 울고 있었다. 사랑이가 앞을 못보는 것 같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싸고 문으로 바로 못나오고 변기쪽에 부딪치고 불러도 눈을 못 마주치더라고 했다. 나는 호들갑 떨지 말라고 화를 냈다. 강아지들은 주인의 기색을 잘 살피는데 사랑이는 특히 누나 껌딱지라고 할만큼 누나만 잘 따랐다. 몸이 아픈 사랑이가 패닉 상태인 누나로부터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빈혈 때문에 어지러워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진정시켰다. 1시 쯤 방에 있던 누나가 울면서 사랑이를 안고 나왔다. 사랑이가 숨도 가쁘고 고개도 못 가눈다고 했다.


    병원에 전화를 했다. 마침 사랑이의 주치의가 당직 수의사였다. 바로 병원으로 갔다. 사랑이가 아프고 나서 계속 누나와 함께 가다가 이번엔 시간이 너무 늦어 혼자 갔다. 가는 동안 내 무릎에 누워있던 사랑이가 병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부터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오줌이 마려워서 그런가 싶어 병원에 도착해 잠깐 주차장에 내려놨다. 일요일에 병원에서 데려올 때는 차에 타기 전에 잠깐 내려놨더니 참았던 오줌을 쌌었는데 이번엔 한 대여섯 발자국 걷다가 가만히 서 있길래 안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수의사는 저산소증 같다면서 바로 산소호흡기를 하고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나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 빈혈 증세는 나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적혈구 수치는 수요일 검사 때와 거의 같았고, 백혈구 수치는 아직 정상치보단 높았지만 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엑스레이 촬영에선 간이 비대해진 것이 관찰된다고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건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뇌 신경계에 이상이 생겼거나 저산소증 때문일 수 있는데 정확한 진단은 MRI 촬영 등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해보기전까진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일단은 산소호흡기를 하고 계속 지켜보면서 당분간 장기 입원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했다. 수의사의 얘기를 듣고보니 당장 사랑이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약물 부작용이 의심되기 때문에 투약도 중단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말씀대로라면 지금 사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산소호흡기만으로 상태가 좋아지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너무 부정적으로 얘기한 것 같다며 산소호흡기와 수액 처치를 했기 때문에 호흡곤란 증세가 가라앉으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믿고 싶었다. 


    3시가 넘은 시간이었기에 사랑이를 맡기고 집에 가기로 했다. 오기 전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랑이를 보러 갔는데 사랑이는 목커버를 하고 랩으로 얼굴 부위를 감싼 채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처치대 안에 있었는데 눕지도 앉지도 않고 네 발로 서 있었다. 기운이 없을텐데... 계속 서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사랑이를 안고 빨리 나으라고 얘기했는데 사랑이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목이 메였다. 더 안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당직 수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얘기하고 집에 왔다. 일요일 새벽에 사랑이를 두고 올 때와 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개는 원래 근시이고 후각과 청각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실내에서 생활하는 개들은 시력을 잃어도 조금 불편하겠지만 잘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시 건강해져서 집에 오자. 맛있는 거 많이 주고 잘 돌봐줄께.


    병원에서 온 전화 소리에 잠이 깼다. 사랑이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저체온증이 와서 급하게 수혈을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바로 병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 다시 전화가 왔다. 사랑이가 죽었다고 했다. 병원에 두고 온 지 채 여섯 시간도 안 된 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집에 데리고 있었어야 하는데. 눈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가 차가운 병원 플라스틱 처치대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낯선 곳에 자길 혼자 두고 갔다고 얼마나 원망했을까. 즈이 언니를 얼마나 찾았을까. 불안해서 앉지도 못하고 서 있었는데 내가 안고 같이 있어줄 걸. 따뜻하게 품안에 데리고 있다가 보내줄 걸. 후회가 밀려왔고 눈물이 쏟아졌다. 


    견딜 수 없이 아픈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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