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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희 선생의 엽서
    나의 이야기/대화 2015. 9. 15. 15:20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최명희문학관.

    한옥마을에 갈 때마다 이곳에 꼭 들른다.


    이곳에 가면 선생의 생전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선생이 절친이었던 이금림 작가에게 썼던

    자필 엽서를 가만히 읽고 있으면 마치

    선생과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선생의 강하면서도 예민한 성정이

    길지 않은 엽서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생은 친구에게 일상의 면면에서

    깊은 내면의 괴로움까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털어놓았다.


    지난 겨울 콩심이의 절친인 H와 오랫만에 이곳을 찾았는데

    전시된 선생의 사진과 엽서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오래 전 콩심이와 함께 왔던 적도 있지만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선생의 생전 모습과 글에서 콩심이가 느껴졌다.

    H도 콩심이와 닮은 모습에 놀라며 

    콩심이에게 보여줘야 겠다고 

    사진을 찍어갔다.


    콩심이도 선생처럼 강하고 예민했다.

    나는 콩심이가 좀 더 유연하고 건강하길 바랐으면서도

    그녀의 섬세한 감성에 늘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 예민함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의 아름다웠던 시간들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못했을테니.

    그녀는 자신만의 섬세함으로 내 작은 것들까지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ㄱ)


    램프를 하나 샀었다.

    비가 몹씨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구월 오후, 시장에 들렀다가 문득

    충격처럼 사고 싶어졌었다.

    현란한 빛깔의 옷과 옷들, 싱싱한 채소,

    푸성귀값을 깎는 중년 여인네, 역하면

    서도 생명력에 넘치는 市場의 비린내

    속에서 어쩌면 그처럼 조그맣고 아늑한

    램프를 구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밤, 비밀스러운 축제를 준비

    하는 마음으로 심지에 불을 당기었다.

    아아,

    내 영혼의 어둡고 좁은 회랑 벽

    한쪽에서도 그처럼 누군가 점화시켜준

    램프가 빛을 밝혀 주었으면.

    나는 요즘 아주 형편없이 질컥질컥한

    어둠 속에 버리워진 채 무질서한

    彷徨과 집념에 감겨 날마다 피로

    한 얼굴로 혼자 몰래 울곤 한다.

    너는 내게, "네 삶은 클래식이야"

    했었지 않니.

    지금도 네가 나를 보면 그렇게 말할까...



    ㄴ)


    나는, 오만하고 우아한, 견제와 위엄을

    지닌 여자이고 싶었다.

    감정보다 理性이 나를 지배하는,

    자기를 낭비하지 않는 여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금림아.

    나는 어째서 이토록 自己를 풀어던지고

    자기의 올가미에 묶여 허덕이고 있을까.

    다시 나를 오그리고 싶다.

    차디 찬 理性, 가슴 시린 理性과

    論理가 제발 나를 지배해줬으면.

    한때 나는 무섭게도 계산에 치밀

    하고 나에게 지극히 충실한 에고이스트

    였었다.

    나는 그것이 지겹고 싫고 그 고리가

    내 목을 숨막히게 조이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 온 몸의 힘을 다 해 그 벽

    을 깨뜨려 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어이없게도 허물어진

    나의 흔적이 너무 가엾어 괴롭다.

    이제 가을, 낯 선 거리를 떠돌던

    나그네들은 귀가의 길을 서두른다.

    나도 다시금 나의 모습, 차디차게

    문들 닫은 얼굴로 돌아가야지.


    ㄷ)


    만나 차분히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학교 다니는 것도 아주 지질해서 싫고,

    네가 下鄕했을 때 내가 안고 있던

    어지러운 문제, 그것은 아주 간결하게

    끝났다.

    내가 그처럼 혹독하게 시달린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게, 아주 담담하고

    지극히 무심하게 내가 정리되어버

    린 것은, 참 잘 된 일이었다.

    나는 그의 소식을 아주 오래 전에부터

    듣지 않고 있다. 최근에 들은 소식이라면

    얼마 전에 한 아이가 그를 만났는데

    내가 자기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맥주 산댔어요. 우리 모두 갑시다.

    하고 동행들을 끌고 우리집 쪽으로 왔

    었다 한다.

    "정말이야요?"

    그 아이가 반가운 마음으로 되묻자

    우울하게 웃으며

    "내게 전활 할 리가 있어요?"

    하더니 중앙동 Salon에서 자기끼리

    맥주를 마시고 말없이 헤어졌었단다.

    별로 마음이 좋지 않더라만 그것도

    잠시일 뿐 금방 잊고 말았다.

    내가 나쁜가? 내가, 나쁜가-?


    ㄹ)


    너는, 고등학교 때,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뺨이 붉은 아이야.

    이담에 내가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때까지 너는 이렇게 젊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여라."

    나는 그말을 오래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경림아, 나는 정말 네 말대로,

    늙어 쇠잔하게 사라져 갈 때까지

    붉은 뺨을 가진, 사과같은 여자여야겠다.

    이렇게 지쳐있는 얼굴은 내것이 아니야.

    나는 건강한 여자, 生命에 넘친

    고귀한 여자이고 싶다.

    흘려버린 눈물이 던적스럽듯 쏟아

    버린 감정은 추하고 끈적인다.

    우아한 여자.

    그윽한 여자.

    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나는 알고 있다.

    生命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처럼 풍요로운 기대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의 30代를 위해서

    나는 좀 더 나를 아껴야해.

    <이번에 약간 좋은 일이 있었어.

    '전국 대학생 문화 예술제'에 문예현상









    나는 몇날이나 네 주변에서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自己를 마무리할 줄 몰라, 미친 팽이처럼 채찍을

    맞으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회오리 돌고 있었다.

    내가 내 머릴 싸안고 울면서, 기도하듯이, 어떻게, 내가 어떻게

    를 외우곤 했었다.

    3월 26일로 기전여고를 그만두고 전북대학교로 편입해갔다.

    意識, 내 生에 대한 나의 野望, 그리고 허영심, 정말이지

    야망이란 허영인 것, 나의 生이 화려하고 찬란하기를 열망한다.

    처음에는 도무지 초조하여 견딜 수 없었던 아르바이트도

    내가 기전학교에 나갈 때 정도의 수입을 줄 수 있는

    것이 생겨 감사하고 있다.

    理性? 금림아, 너는 나한테 그렇게 고귀하고 창백한

    理性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아아, 얘야, 금림아. 明姬는 바람개비란다.

    실낱같이 가느다란 바람에도 몸살앓듯 돌고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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