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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영, 진짜 배우였던 그녀
    영화 이야기/수다 2009. 9. 1. 23:07

    장진영.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1년 간의 투병 생활동안 몇 번 매스컴을 통해 병세가 호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 즈음... 그녀는 거짓말처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다시 그녀에 관한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도록. 나의 기억 몇 가지를 보태본다.   




    <소름>의 510호 여자 선영.

    일일 시트콤의 조연으로 연기를 시작한 장진영은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뒤, <소름>에서 그 동안의 경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운좋게도 <소름>을 개봉당시 극장에서 봤다. 요즘처럼 깔끔한 멀티플렉스가 아닌 앞 뒤 간격이 좁아터진 의자에서 칙칙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단관 상영관이었다. 이듬해인가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들어오자 다른 극장들과 함께 문을 닫아야만 했던 그 극장은 <소름>의 어둡고 싸늘한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영화는 어둡고, 어려웠다. 하지만 전등이 깜빡거리던 미금 아파트의 음침한 복도에 울려퍼지던 용현(김명민)과 선영의 기괴한 웃음 소리처럼 두 배우의 강렬한 이미지는 깊숙히 각인됐다. 장진영은 이 작품 이후 최고의 여배우로 급부상했고, 김명민도 뒤를 이어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국화꽃 향기>의 희재.

    사랑하는 이들을 사고로 잃은 슬픈 아픔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했던 희재. 새로운 사랑을 만나 아픔을 치유해가는 듯 했지만 자신 역시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소름> 이후 상대적으로 가벼운 멜로 영화에 출연한 그녀였지만 캐릭터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녀의 능력은 영화의 무게를 가리지 않았다. <국화꽃 향기>의 처연한 캐릭터 희재는 장진영 그녀의 실제 삶과도 닮아있어 앞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인하가 되어 그리움 가득한 목소리로 희재를 부르게 될 듯 하다.     





    <싱글즈>의 당찬 그녀, 나난

    아마 사람들이 장진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기억하는 캐릭터가 <싱글즈>의 나난이 아닐까 싶다. 당당하면서도 귀엽고, 팍팍한 현실에 기죽는 법이 없는 발랄한 스물 아홉 싱글녀 나난은 이 시대 젊은 직장 여성들의 아이콘과도 같았다. 덕분에 장진영은 여느 여배우들과 달리 오히려 여성 팬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난은 그녀의 짧은 생을 기억하는데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캐릭터로 남게 됐다. 길지 않은 배우로서의 삶 중에 그녀가 나난이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남기고 떠난 것은 그녀에게나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나 참 다행인 일이다.     






    <쳥연>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

    <청연>은 실제 주인공의 친일 행적 논란과, 각본을 맡은 이인화의 정치적 입장 등, 영화 외적인 면에서 무수한 비판을 받아 좌초돼버린 작품으로 기억된다. 윤종찬 감독의 의욕이 지나쳐 영화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하는 사람들조차 박경원을 연기한 장진영에 대해선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름>의 윤종찬 감독과 다시 작업한 장진영은 최초의 여류 비행사인 박경원의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함으로써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뽐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순정파 나가요 연아.

    60억 인구가 사는 세상에, 60억 가지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영화.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이 영화는 제목과 포스터만 보자면 상큼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실은 특별한 직업 없이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도우며 사는 영운과 룸싸롱 종업원 연아의 막가파 식 연애를 다루고 있다. 장진영은 이 영화에서 거친 욕을 입에 담고 살지만 가슴 한 편에 일편단심 순정적인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연아의 캐릭터를 늘 그래왔듯이 완벽하게 연기해낸다.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도 늘 기품있는 여배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진짜 배우 장진영.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배우로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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